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5
‘쓰~읍’하고 심호흡을 하면, 가슴 깊숙이 자몽 주스를 먹을 때나 맡을 법한 새콤~달콤한 향기가 배어 있는 저녁 공기가 아까워서, 아내와 저녁을 먹자마자 서둘러 상을 치우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해 넘어가려면 얼마나 남았나 봐줘"
"글쎄... 거의 해가 넘어가려는 것 같은데?"
"음... 그렇게 말고 ㅋㅋㅋ 지평선과 해가 만나는 각도가 얼마쯤 남았나 봐줘 봐 바 ㅋㅋㅋ"
"응. 한 25도 정도? ㅋㅋㅋ"
"아 그래? 그러면 해가 지려면 1시간 반 정도 남았구나 (180도÷12시간=15도/시간). 그럼 설거지 나중에 하고 지금 산책 나갈까? 내가 걷기 좋은 코스 알아 놨지"
"그러지 뭐^^"
나는 아내와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어느 지점을 향해,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가기를 재촉하지만, 아내와 함께 걸을 때에는 그저 그 길 위에 함께 있다는 그 자체가 소중할 뿐이다. 그 시간이 되도록이면 더 느리게,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어느 순간 그대로 멈추어 버리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내와 함께 걸을 때는 아내의 손을 잡아 내 호주머니에 쏘~옥 넣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소중히 음미하듯 걷는다. 어느 때에는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서 끼고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사람이 뜸하다 싶으면 이어폰을 빼고 음악을 둘이 가까이 붙어 있어야 들릴 만큼만 조그맣게 틀어 놓고 걷기도 한다.
작은 도랑이 흐르는 옆으로 난 산책길은 얼마 전 동네 탐험(?)을 통해서 알아낸 길이었다. 그 길을 혼자 걸으며 줄곧 아내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야 함께 걷게 된 것이다.
아내가 옷을 갈아입으며, 입고 나갈 산책복(?)이 변변한 게 없어서 못 나가겠다는 귀여운 앙탈을 부렸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산책을 무산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작은 산책길로 접어들자, 달표면에서 우주복을 입고 사뿐사뿐 걷는 것처럼 마음과 몸이 가벼워졌다.
며칠 전 보았던 눈처럼 피어난 조팝나무 꽃들이 이제는 시들어 나무 위에서보다 바닥에 더 많이 깔려 있는 것을 보고 아쉬워하기도 하였고, 쌍벚꽃이 동글동글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게 '쌍벚꽃이냐, 겹벚꽃이냐, 아님 겹쌍벚꽃이냐'를 심각하게 논하기도 했다.
얕은 시내가 흐르는 다리 밑에서 비둘기가 자기 무릎(?)까지 발을 담그고 찰박~찰박 물을 먹고 있는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하였고, 물을 먹으려 고개를 숙일 때 똥그랗게 나온 배가 물에 젖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구경하기도 하였다.
어린 묘목으로 심은 라일락 나무에서 이제 몇 가닥 피어나는 라일락 꽃향기를 맡으려고, 코 평수를 넓히며 다가가다가 미처 보지 못한 삐죽한 나뭇가지에 이마를 찔리기도 하고, 그 작고 어린것이 자기도 나름 라일락이라며 내는 향기에 흠뻑 취하기도 하였다.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을 모아두는 곳이라고 하는 커다란 물웅덩이에서 오리 두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 이게 농장에서 도망쳐 나온 오리일까, 아님 철새일까, 그게 철새라면 우리가 사는 동네가 철새 도래지란 말인가? 에 대해 괜한 궁금증을 가져 보기도 했다.
산책 나온 어린 흰색 강아지가 모처럼 밖에 나왔는지 폴짝~폴짝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우리와 마주쳤는데,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우리 다리 사이에서 뱅글뱅글 맴을 돌며, 우리 다리를 두 발로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강아지 주인이 무척 미안해하면서 "우리 강아지가 다른 사람에게는 잘 안 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모르겠네요.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라고 할 때 우리는 "아녀요 괜찮아요. 우리한테서 고기냄새가 나나 보죠 뭐ㅋㅋㅋ"하며 쿨~하게 보내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서면서, 이때쯤이면 멋진 노을이 지겠거니 예상했는데, 날이 조금 흐려서일까? 그냥 뿌~옇게 하늘이 변할 뿐 노을이 멋지게 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아내와 함께하는 그 시간의 즐거움을 상쇄하지는 못했다.
아내가 이제는 자주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처음 나설 때보다 조금 더 차가워진 저녁공기에 주머니 속에 있는 아내의 손을 한번 더 꼬~옥 쥐어 주었고, 적당하게 뻐근해진 다리 근육과, 함께 들었던 노래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콧노래로 되뇌는 아내의 잔잔한 노래가 귓가에 맴 돌 때, 그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의 사랑, 나의 님이여, 일어나 함께 갑시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으며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때가 되어 비둘기 소리가 들리고 있소. 무화과가 맺히기 시작하고 포도나무가 꽃이 피어 향기를 날립니다. 나의 사랑, 나의 님이여, 일어나 함께 갑시다." (아가 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