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6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직도 뭔가 질문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
그래.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더 정확한 질문이 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하신 OOO 장로님의 병문안을 갔었다.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오른발을 내디뎠는데, 그 순간 급하게 우회전을 하는 차량의 앞바퀴가 장로님의 오른발을 타고 넘어가버린 것이다.
병실에 들어가 장로님의 핸드폰에 담긴 응급실에서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셨는데, 오른발 뼈가 골절되고, 엄지발가락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피부와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으깨지고 벗겨져 있었다.
지금은 골절에 대한 고정술과 피부 봉합술을 해 놓은 상태인데, 앞으로 얼기설기 이어 붙인 발가락과 피부가 괴사 되지 않는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의사로서 병문안을 갔을 때에는 내가 병문안을 간 것인지 병실에 회진을 돌러 간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가능하면 전체적인 상황을 주의 깊게 듣고, 담당 주치의와 환자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부분을 짚어내어 소통을 원활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당연히 환자로서 여러 가지로 걱정하시는 바에 대해서 내가 아는 한 최대한 설명을 해드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위험과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미리 안내를 해드렸다.
수술이라는 것이 주치의가 만족하는 수준과 환자가 만족하는 수준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고, 정형외과와 같이 환부가 뻔히 보이는 수술을 한 경우에는 더욱더 환자가 만족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불확실한 부분에 대해서는 주치의는 가능한 말을 아끼려고 하고, 환자의 입장에서는 속 시원하게 뭐라도 얘기를 해 주길 바라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가기 마련이다.
장로님과 가족들이 주치의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실 때에도, 어찌 되었건 처음 집도를 하신 선생님이 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계시니, 섣불리 병원을 바꾸거나 주치의를 바꾸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을 잘 지켜보면서 그에 맞게 대처해 가시도록 안심시켜 드렸다.
병실을 나오기 전, 마지막에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내가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생명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변치 않고 다스리심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의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온전히 회복하게 해 주실 것을 간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한참을 더 기도하다가…우리를 위해 자신의 살점을 찢고 뼈를 부수며 피를 흘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깊이 체험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린다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되었다.
이때 나를 비롯하여 기도를 함께 하던 장로님과 가족들이 모두 통곡을 하며 울음바다가 되었는데, 이것은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그때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사무치게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 못 박히고 창에 찔린 상처를 보존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는 완전하고 흠이 없는 모습으로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다.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섰을 때에는 이 땅에서 지녔던 어떤 부족함도, 소경도, 귀머거리도, 중풍병자도, 앉은뱅이도 모두 온전한 부활의 몸으로 서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몸과 마음의 모든 상처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려고 남기셨던 그 상처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몸과 마음에 새겨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 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와 아픔의 기록은, 우리 주님이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셨다는 지워지지 않는 영광의 기록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남사스럽게 전철 문 옆자리 구석에 혼자 등 돌리고 서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우리의 험난한 삶의 여정에 깃든 하나님의 섬세하고 깊은 섭리를 더욱 묵상하게 되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소중한 그것,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