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과 장마전선 어머니와 개미 그리고 믿음의 상관관계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7

by 따뜻한 손


오늘 저녁에 일기예보에서 장마전선이 북상한다고 하더니, 오늘 오시는 환자분들마다 평소보다 더 관절이 쑤시고 아프다고 하신다.


오래전 – 일기예보가 요즘처럼 잘 들어맞지 않던 때에 – 전국에 있는 관절염 환자들에게 인터넷과 연결된 버튼을 하나씩 드리고, 오늘처럼 평소와는 달리 이상하게 통증이 더 심해지는 날에 그 버튼을 누르라고 하면, 아마도 매우 구체적인 지역단위로 매우 정확한 일기예보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이른바 전국적인 관절염 네트워크를 갖춘 생생한 일기예보가 되는 것이다.


보통 기압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바뀌는 구간에서 관절 통증은 더 심해진다. 차라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통증은 더 완화되기 마련이지만, 관절은 신기하게도 비가 오기 전에 그 기압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미리 알아차린다. 예전에 할머니들이 비 오기 전에 "아가야~~ 빨래 걷어라~"라고 하신 것이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어떤 환자분들은 내 나이가 아직 젊은데 비 오는 것을 미리 알아버린 관절이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시고, 그런 환자를 보면서 나는 병이 악화되어서 더 아픈 것이 아니라, 환경이 바뀌어서 통증이 더 느껴지는 것이니 안심하시라고 하루 종일 환자를 달래는 중이지만, 아픈 환자도, 달래는 의사도 모두에게 고역이긴 마찬가지이다. 차라리 비가 올 것이라면 어서 후드득 떨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괜스레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기우제 아닌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학교 가는 나를 불러 세워 놓고 "오늘 비 온단다. 우산 가져가~"라고 하셨을 때가 생각난다. 어린노무자슥이 엄마가 우산 가져가라고 하시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데, 나는 땅바닥의 개미집부터 살폈다.


개미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영락없이 개미집 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글자 그대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되기 때문이다.


작은 마당이 있었던 옛날 집 현관에서 대문까지, 빨간 벽돌 사이사이로 개미집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허리를 굽히고 유심히 살피다가 하늘이 꾸물꾸물 비가 내릴 것처럼 구름이 많은 날이라 하더라도, 개미들이 열심히 개미집 근처에서 꼬물거리고 있노라면, 이내 우산을 내팽개치고는 학교로 달려가곤 했다.


비 온다는 어머니의 말씀보다도 개미의 행동이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오감(五感)의 한계는 일일이 다 표현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집 앞 골목길 어귀만 들어서도 주인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반갑게 짖어대는 강아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에 있어서는 사람의 오감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가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맛보거나, 냄새 맡을 수도 없는 분이시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의 저자들을 통해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배워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말씀이 그저 글자의 나열이거나 옛날이야기처럼 다가올지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다움'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오감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한계를 더욱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이라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영적인 감각기관과도 같아서, 믿음이라는 망막(retina) 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시고 어떤 것을 싫어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사랑의 열정이 어떠하신 것인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일들을 계획하시고 감행하셨는지에 대한 영상이 선명하게 맺히도록 하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맺힌 영상을 우리의 영혼에 깊숙이 투영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알아가기 원하게 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나도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보여주신 사랑의 열정에 나도 열렬하게 반응하며 더욱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곳을 나도 같이 바라보며 내 소망의 닻을 그곳에 함께 내리며,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듣고 보고 만지며 맛보고 냄새 맡는 이 현실 세계조차도 영원하며 영적인 세계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감으로 만나는 현실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견고하고 더욱 굳건하게 붙잡는 것이다.


비 오려고 하는 날, 쑤시는 관절과 개미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살짝 엿보게 된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개미를 따를 것인가.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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