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8
‘미움(hate)’ 이라는 마음의 상태는 인간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원래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으로 멀어진 인간에게 나타난 죄의 특성일까?
거듭난 사람에게도 미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미움의 선한 작용은 없는 것일까?
하나님에게도 ‘미움’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미워하는 마음은 어쩌면 사람에게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나 한 사람만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될까?
아마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워할 다른 대상이 없어진다고 해도, 미워하는 마음은 어떤 대상이든 찾아내서 – 그 화살의 방향을 나 자신에게 돌려서라도 – 미워하는 마음 자체가 꿈틀거리며 살아있도록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마음이 죄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성경의 곳곳에서 미워하는 마음은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대표 증상으로 손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선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없는지 말이다. 만약에 그런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을 허락하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비교적 정당하게(?) 작용할 때에는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방어막과도 같아서,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상대방을 멀리 떨어뜨리거나, 그 상대방을 소멸(!)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을 상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하여) 험한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게 하는 것은 그 존재의 본능이므로, 미워하는 마음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하는 일과도 비슷하다. 우리 몸 속에 들이닥친 병균을 철저히 밀어내고, 잡아먹고, 청소하는 역할을 면역세포가 하게 되는데, 이 작용이 멈추면 그 생명체도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도 ‘미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순간적으로 일렁이는 감정에서 비롯된 미움이 아니다. 하나님의 미워하심은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거룩하신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성이신 거룩함에 배치되는 것, 즉 거룩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반응과 미움을 표현하신다.
그래서 인간을 향하신,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가장 큰 계명을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로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께서는, 그분의 거룩하신 속성을 따라 참되고 거룩하신 빛을 우리에게 비춰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며 회개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미움'의 선한 작용이다.
하지만 성화의 과정 속에서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선하게 작용하지 않는 미움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다. 미움의 올바른 대상인 자신의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은 사람을 미워하고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움이 마음 속으로 쌓이고 고이게 되면, 그나마 있었던 미움의 선순환(善循環)은 그치게 되고, 미움의 독성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병들어가게 된다.
독사가 자기 혀를 깨무는 격이다.
미움은 미워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인데, 미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은 사실상 내가 미워하는 대상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내가 미워하는 대상을 나의 마음에서 밀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보다는 되려 더욱 더 깊은 속박으로 얽혀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수동적으로 그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미움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그 어떤 것도 – 미움이라는 감정조차도 – 그것이 우리의 주인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눈치채고 있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우상이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미움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마련이고, 그 바탕 위에서 마음 놓고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 미워하는 마음이 살아남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정당함이 하나님 앞에서도 의롭게 보일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 자녀들이 미움이라는 끝없는 개미지옥에서 빠져 나오게 하기 위해서, 그 원한을, 그 끈질긴 미움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신 것 같다. 그렇게 할 때만이 사람은 그 끝없는 수렁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다.
이제야 시편에 원수들을 향한 탄원시가 그토록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미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정당성을 하나님께 인정 받음으로써 그 미움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기에, 가장 공의로우신 분이 나의 편이라고 말씀해 주시기에,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가장 듣고 싶어하시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니, 아침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말씀을 듣게 해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의지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주님, 내가 주님께로 몸을 피하니, 내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의 선하신 영으로 나를 이끄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님의 의로우심으로 내가 받는 모든 고난에서 내 영혼을 건져 주십시오. 주님은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시니, 내 원수들을 없애 주십시오. 나를 억압하는 자들을 멸하여 주십시오.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시편 143:8-12)(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