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그 용기에 대하여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9

by 따뜻한 손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던 후배가 어느 날 나에게 심각한 얼굴로 질문을 하였다 (그 후배는 20대 중반의 나이의 대학생으로, 학기 중에 결혼을 하였고 결혼 후 얼마가 지난 상태였다).


"선생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나는 그 후배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 속에서 자라왔던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항상 가정에 대한 애틋함과 두려움을 함께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질문의 무게를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글쎄… 부모가 된다는 건 큰 책임을 진다는 뜻인 것 같아. 그러기에 부모가 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지.


우리는 우리가 아이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봐야 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선물을 받을 용기, 그 소중한 선물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을 감당할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


하지만, 그 책임이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해도, 새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그 책임을 책임으로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부모로 다시 태어나는 거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책임 있는 부모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야."


그렇게 대화를 마친 얼마 후, 그 가정에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가 태어나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가정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한 환자의 이야기이다.


작년 이 맘 때였을 것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약을 먹고 있던 환자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류마티스 약을 먹을 때에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고, 환자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만 임신이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아주 임신 초반에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태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을 몸에서 빠르게 배설하도록 하는 해독약을 먹도록 하였고, 환자는 먹기에 고역스러운 해독약을 잘 참아가며 먹었다. 아마도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 아이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이를 또 낳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끝 모를 연장진료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환자가 출산을 할 때까지,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마치 가슴속에 물이 찰랑찰랑 넘칠 것 같은 그릇을 품고 사는 사람처럼, 병원에 있던 집에 오던,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늘 마음 한편에 그 환자를 위한 걱정과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의학적 지식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다 할지라도, 이 문제는 우리의 영역과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한계 바깥의 문제는 오직 그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몫이요, 우리는 그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로 이 문제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지난주에 그 환자가 까맣고 또롱또롱한 눈망울을 가진 갓난아이를 업고 진료실에 왔다.


아직 백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건강한 그 아이를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하는 환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잘 치료해 주셔서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는 환자에게, 나는 용기를 잃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텨주어서 고맙다고 하였다.


내 어깨에 늘 짊어지고 사는 곰 한 마리가 사라진 기분이다.




환자는 벼랑 끝에 덩그러니 남겨져 외롭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도 많은 용기를 가지게 된다.


아마도 진료실 밖에까지 이어지는 의사의 연장진료는 그런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누군가 내 편이 있다는 것, 의사의 맘 편히 못 자는 잠자리 한 귀퉁이 속에서, 환자의 편히 못 자는 마음 한 조각을 서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생길 때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통해서 다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만약…그 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면, 부모는 그 아이와 함께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의 원흉이 되었던 우리를 부르시고, 아들과 딸로 삼아 주시는 하나님을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부모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게 되고, 조금이나마 닮아가게 된다.


한편에서는 낙태를 더욱 자유롭게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가 안고 살아야만 하는 찢어진 가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한없는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와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부모가 되려는 것을 망설이는 분들께 한없는 용기를 주시기를, 그리고 찢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가야만 하는 분들에게도 한없는 용기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의 약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견고한 용기와 끝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고 싶어 하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그 거룩하신 이름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다는 뜻은, 곧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심장을 뽑아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부르스 밀른, 요한복음 강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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