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일 년 전 나는 매주 정신과를 드나들며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처음에는 자살 충동과 우울감이 약을 먹어도 좋아지질 않아서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 옮겨 다니기도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강남에 정신과가 이렇게 많고 예약이 힘들 정도로 문전성시 중이라는 걸.
항우울제는 잠은 잘 오고 우울해지지 않게 해주었지만 내 의지가 아닌 외부 요인으로 기분이 통제되는 아주 묘한 감각을 선사했다. 기분이 나빠지지도 않았지만 좋아지는 일도 없었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상태였는데 약을 먹으면 화도 안 났다. 강제로 기분 안정권에 잡혀있는 느낌, 딱 그거였다. 의사는 내 상태를 고려하여 강하게 처방했다고 말했고, 그래서인지 때로는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너무 붕 뜬 나머지 조증이 오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사람의 감정이 조절 가능하다는 게 거부감이 들었다. 3개월 넘게 약을 먹었지만 크게 나아진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냥 인위적으로 우울해지지 않게 강제로 붙잡힌 느낌만 유지될 뿐이었고, 의사는 곧 내 마음가짐을 바꿔야 된다는 말만 매주 반복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문제라 우울증이 온 걸 모르진 않았다. 지옥은 내 마음에서 온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당장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내 집, 내 회사 내가 있는 곳들이 다 지옥인 것 같았고 여길 벗어나기만 하면 우울증이 나을 것 같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남편에게 강원도에 가서 일 년만 살고 싶다고 했지만 가서 뭘 어쩔 거냐고, 어떻게 벌어먹고 살 거냐며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돌려하는 거냐는 말만 돌아왔다. 남편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불행해진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후 가게 된 정신과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고 나니 내가 아이 인생에 문제를 만들 것 같아 그날 이후 결국 스스로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무슨 짓을 할지 무서워 베란다에 못 나가던 시절이었다.
약을 먹어도 내 자신이 내 마음 대로 되지 않아서 뭘 해야 나을지도 모르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무력하게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다. 정신력이 약해서 우울증이 온다고들 하는데, 일단 우울증이 오면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건 힘들다. 우울증에 걸리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전에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우울감이 있었다. 우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항상 나의 내면은 좀 어두웠다.
가족들은 내가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이 오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내밀한 속사정은 나만의 것이라 이해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고깝게 들렸다. 육아 때문에 매일 만나기 때문에 나의 병을 숨길 수 없었고, 내게 엄마가 한 말이 하나 기억에 남는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그럼 남들도 이렇게 사는데 별 거 아닌 인생을 나만 힘들어한다는 것인가. 남들보다 나은 삶인데 복에 겨워서 약해 빠져 가지고 혼자 땅 파고 있단 말인가. 남이 어떻게 사는지 알면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건가. 이러든 저러든 비난의 의도로 밖에 안 들렸다. 새삼스럽게 역시 인생은 혼자구나, 철저히 혼자다 싶었다. 어디에도 기댈 구석은 없었다. 우울하고 외로웠다.
약을 먹은 지 두 달 정도 지나자 고장 난 수도꼭지 같은 눈물은 말랐지만 마음 자체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내 현실이 아무것도 안 바뀌는데 병이 나을까 싶었다. 아무런 희망이 안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뭔진 모르겠지만 뭔가가 바뀌리라 마음속으로 곱씹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단호하게 이혼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내 불행보다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다. 정말로 이혼하면 괜찮아질까 봐 무서웠다. 내가 선택한 남편이 오답이었다는 결론으로 이 결혼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 선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외도, 폭력, 도박 사유가 아니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쌍욕과 내던지는 물건이, 부서지는 살림이 내 몸이 될까 봐 무서웠지만 참지 않기 시작했다. 폭언도 폭력이라고, 때려보라고 들이밀었다. 차라리 한 대 맞으면 빼도 박도 못한 이혼 사유가 돼서 차라리 편해질까 싶었다. 끝까지 가보자고 들이댔지만 상상했던 그림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자 내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 모든 부부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세뇌를 하는 것만이 나의 최선이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졸혼이라는 옵션이 생기니 15년만 기다리자고 되뇌었다.
내가 처한 현실을 당장 바꿀 수 있는 다른 옵션은 퇴사 정도였으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지면 아이랑 집에 있어야 하는데 온전치 않은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돌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중 여느 때처럼 정신과 정기 상담에서 물었다.
‘전 언제 나을 수 있을까요?’
의사의 대답은 참 실망스러웠다. 단기적으로 나을 병이 아니며 마음 단단히 먹고 여유를 가지라나. 저 사람 모르는구나. 알레르기 체질이라 성장기 동안 피부과 병원을 수없이 다녔던 경험으로 감이 왔다. 이 서울대 출신 할머니 의사는 나를 낫게 하지 못하겠구나. 이 약은 나를 죽지 않을 정도로 잡아놓을 뿐 낫게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병원을 끊었다. 그때 나는 항우울제 금단 현상이 엄청 강하다는 걸 몰랐다. 다음날부터 당장 약을 끊었고, 불면증부터 롤러코스터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때문에 2주 넘게 고생했다. 그냥 이 악물고 버텼다. 아이를 위해서 내가 스스로 이겨내 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정신병을 가진 엄마가 제대로 아이를 기를 수 없을 테니 기약 없는 약에 의존하지 말고 빨리 떨쳐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또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최대한 아무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걱정도 많고 불안도 높은 사람이라 일상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노하우도 생겼다. 우울증에 햇빛이 좋다고 해서 재택근무라도 하는 날에는 귀찮아도 점심시간에 꼭 산책을 했다. 필라테스도 시작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얼른 일어나 넷플릭스를 켰다. 좋아하는 스릴러를 끊고 일부러 코미디나 드라마 장르만 봤다. 그러자 느끼지 못하는 사이 보통의 상태 정도로는 돌아왔다.
요즘 나는 점심시간의 공원 산책이 정말 좋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바람 부는 소리, 잎사귀들이 사그락대는 소리,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지루하지만 이 인생을 살아 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