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빠른지 깜짝깜짝 놀란다. 사람의 마음도 갈대와 같아서 좋았다가, 일하러 가고 싶다가, 초조했다가 평화롭다가 참으로 바쁘다.
퇴직 후의 삶이라는 게 참 너무나 예상 그대로라서 뭐 하나 다른 게 없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예상대로 나는 주부 재질의 사람은 아니었고, 집안일에 능력도 열정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이 여유로워져 내조와 육아가 나아진 것도 아니고, 월급이 없어져 돈 쓸 때마다 마음은 불편하고, 딱히 아이가 엄마가 집에 있어서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잃은 건 많고, 얻은 건 딱 하나.
예전만큼 죽을 것 같이 힘들지는 않다는 것. 하루하루 버티는 심정으로 겨우 살아내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
슬프게도 남편과의 사이도 좋아지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더 안 좋아졌다. 회사원과 엄마, 딸, 아내 중에 가족을 지키고자 회사원을 던졌는데 아내의 역할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배우자를 대충 고른 업보를 치르는 중이다. 내 선택이지 않은가. 노력해야지. 더, 더 노력해야지. 최소한 15년은 노력해야 한다.
또 하나 슬픈 발견은 나는 참 행복해지기 힘든 인간이라는 것이다. 평화로운 외양과는 다르게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여백 없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이제 흐르는 시간에 대한 걱정마저 얹었다. 별로 걱정거리가 없을 만한 삶인데 이 작은 마음 하나가 이렇게 편안해지기가 힘든 걸까. 수많은 생 중에 그저 하나에 불과한 짧은 생일뿐인데 이렇게나 지난할까. 그 어떤 것에도 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한 나는 고장 난 걸까, 원래 이런 인간인 걸까.
무더운 여름날 스쳐가는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들과 구름 사이의 햇빛이 참 눈부신 날이었다. 하루하루 살아 내다 보면 언젠가 끝나겠지. 다른 모든 이들처럼.
부디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