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소강기
퇴직 후 불타던 나는 요즘 소강기를 보내고 있다. 항우울제 먹을 때만큼 많이 자고 있다. 다행히 우울증은 아니다.
작은 사건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의욕을 꺾는, 내 인생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 있다. 이번이 세 번째고, 결혼 이후 주기적으로 2년에 한 번 정도 겪은 일이다. 결혼이라는 상황이 내 인생에 들어온 이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사건을 보며, 내가 왜 발버둥 치며 사나, 어차피 내 인생은 내 맘대로가 아니라 저 사람들 맘대로 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나는 많이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간섭을 못 참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 못 하는 병(?)이 있었고, 정신과 의사와 심리 상담을 거쳐도 그 병을 아직 고치지 못해 내 인생은 여전히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걸 못 고치면 내 인생은 쌍팔년도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화병으로 끝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변하지 못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부모와 자식 사이의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삶을 살 수 없는 걸까.
너를 바꿀 수 없으니 나를 바꿔야 하는데 너 만큼이나 나도 의지도 의욕도 용기도 없나 보다. 그래서 우리가 비슷한가. 그래서 아직도 같이 살고 있나.
절박함이 부족한가. 얼마나 혼자 더 괴로워야 변화를 위한 걸음을 마침내 뗄 수 있을까. 아직도 내 몫의 괴로움이 많이 남은 것일까. 늪같이 나를 잡고 안 놔주는 소심함이 문제인가.
아무리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해도, 나이 들수록 오히려 방어력은 약해지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아무 쓸모없는 소모적인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도무지 고치질 못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오늘의 내가 아무리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민해도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오늘의 나는 여전히 바보 같다.
오늘도 이 작은 삶의 궤적은 쉴 틈 없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