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의 힘으로 달라질 수 있다면

풀배터리 검사와 ADHD 확진

by 시린

최대한 진료일을 당겨 4월 말에 상급종합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에 아이와 함께 달려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교수는 종합주의력검사만으로 ADHD를 확진할 순 없으니 종합심리검사(풀배터리)를 받으라고 했다. 초진이라 그런지 크게 다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아 초조하게 풀배터리 검사날만을 기다렸다.


마침 비는 날이 생겨 5월 연휴 시작 전에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비장하게 검사지들을 챙겨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상급종합병원이니 당연히 1급 임상심리사겠지? 등 하등 쓸데없는 인터넷 카더라 정보로 복잡한 머리로 2시간 넘는 검사 시간 동안 아이를 멍하니 기다렸다. 아이 검사가 끝나고 양육자인 나를 불러 방문한 이유와 평소 아이의 모습 등 몇 가지 질문을 받았고, 그렇게 검사는 끝났다.


검사가 끝나고 나온 아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해맑고, 시끄러웠으며 본인은 재밌었으나 임상심리사가 한숨을 쉬며 힘들어했다는 험담(?) 등을 남겼다.


일주일 후 의사 면담을 앞두고, 풀배터리 검사에 부모양육태도가 나온다는 등등의 후기를 찾아보며, 아이에 대해 심리, 정서, 지능 등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기회라며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첫 진료, 남편을 대동해 분연히(!) 당당하게 들어갔다. 지나고 보니 그때도 아닐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교수는 더듬더듬 진료 결과를 요약해서 전달하기 시작했고, 지나고 보니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결과는 ADHD 확진이며, 약물 치료를 권한다. 가족들끼리 신중하게 논의해 보시고, 약물 치료 시작할지 알려달라, 그 정도만 기억이 난다.


남편은 중증도를 물었고, 교수는 ADHD라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중증도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남편이 바로 약물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하자 나를 보며, 약물치료는 장기간에 걸친 치료이며 가족끼리 합의가 되고, 특히 주양육자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 논의를 하셔라 재차 권했다. 약물 치료를 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반항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사회적 관계에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교수의 말에 나는 약물치료를 바로 시작하겠다고 전달하고, 약물 치료 전 점검을 위한 혈액검사와 심부전검사를 요청받고 진료실을 나왔다.


이 날을 예감이라도 한 것인지 나는 아이의 ADHD 확진 3일 전부터 항우울제 복용을 다시 시작했고, 덕분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앞에서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심심하다고 구시렁거리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돌아서서 조용히 눈물 닦는 나의 머리를 남편이 쓰다듬었다. 두 번째 확진이라 그런지 항우울제 덕분인지 생각보단 충격이 크지 않았지만 아이의 일만은 매번 초연해지지가 않는다. 아이에 관해서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 마음은 참 매번 지치지도 않고 무너진다.


이제, 내가 달라져야겠구나. 이대로는 이제 안 되겠다 싶었다.

내 우울증도 이제 제대로 고쳐야 할 때가 왔다. 아이의 ADHD 치료를 함께 해나가기엔 나의 정신이 충분히 건강하지가 않다.


너도, 나도 나아야지. 무엇보다 내가 나아야 너를 낫게 하는 여정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소중한 아이를 위해서 다시 마음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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