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리는 오늘
바야흐로 벌써 5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는 소아정신건강의학전문 개인병원으로 전원 하면서 놀이 치료를 시작했고, 한 달 후 집 근처 정신과병원의 우울증 치료 효과에 회의적이던 나도 아이와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콘서타를 복용한 적도 있지만 불면증과 식욕 부진이 심해져 다시 메디키넷으로 돌아간 아이는 현재 2달 정도 메디키넷 20mg와 멜로토닌을 복용하고 있다. 비슷하게 놀이치료를 일주일에 한 번 시작한 지 2달 정도 되었다. 나는 병원 전원 후에도 환인설트랄린정 100mg와 수면 보조제를 먹고 있다.
아이는 아주 아주 느리게 조금씩 변하고 있는 중이고, 나는 급격한 변화를 최근 느낀다. 전원을 하면서 주치의의 권고로 놀이치료를 하게 되었고, 아이는 놀이 치료사와 함께 매주 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남편은 놀이 치료의 좋지 않은 가성비와 효과에 회의적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어찌 치료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시간당 8만 원, 한 달에 30만 원이 넘기에 나는 일을 더 하기 시작했다.
놀이 치료 첫 시간에 놀이 치료사는 아이가 엄마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한다,라는 말로 나를 놀라게 만들었고, 매 시간마다 아이의 과도한 허세와 성급한 성미, 비상한 머리 회전 등을 지적하며 나의 협조를 독려했다. 출산 후 내심 모성애와 자기애가 분투 중인 나는 매 상담 시간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다 나왔지만 늘 그랬듯이 나오자마자 잊었다. 이다지도 의지박약이라니. 한숨 나오는 나의 모습이지만 놀랍게도 나의 우울증은 어느 날 갑자기 나아졌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원 할 때만 해도 나는 아이의 주치의에게 항우울증 약이 도대체 효과가 있는 건지 읍소했었다. 그 시간이 무색하게도 5주 만에 갑자기 나의 우울증 증세는 급격히 없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들던 갑자기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나에게 끔찍이도 들러붙어 있던 이 세상에서 먼지처럼 소멸하고 싶다는 욕구가 사라졌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인내심이 크게 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우울증이라고 부를만한 증세는 없어졌다. 시간만 나면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일도 없어졌다. 뭐, 물론 아이 치료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 누워 있을 시간 따위 없는 이유도 있다. 아무튼 나의 우울증은 그렇게 10월로 넘어가는 어느 즈음에 갑자기 좋아졌다.
왜일까 생각해 봤더니 금주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거의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살았다. 사실은 우울증보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해야 되는 거 아닐까 싶은 의구심으로 내심 두려웠다. 그러던 중 심한 몸살로 몸져누워 며칠 술을 마실 수 없었고, 술이나 약이 아니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던 나는 오랜만에 달게 잤다. 그러고 나서는 밤에 잠이 잘 오기 시작했다. 한 시간 넘게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아 괴롭던 밤들을 뒤로하고 11시 정도에 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몸상태가 괜찮아졌고, 싫은 사람과 사건들에 대한 괴로운 되새김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무기력에서 보통의 상태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전원을 할 때 나는 질문을 딱 하나 했었다.
"우울증이 약으로 낫긴 할까요?"
"낫습니다. 반드시 낫습니다. ADHD만큼 약물 치료의 완치율이 좋다고 임상 결과에 나와있습니다."
반드시 낫는다는 말을 해주는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었다. 우울증으로 네다섯명의 의사를 만났지만 의사의 확신 있는 답에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나을 수 있구나.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 아닐까, 평생 우울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을까 봐 불안했다. 처음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던 2021년부터 깔려있던 불안감이 너무 쉽게 걷혔다. 우울증이 낫고 3개월 정도 약물 치료를 유지하면 재발률을 70% 낮출 수 있다며, 제대로 치료를 받기만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차분하게 말하는 의사의 말에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 자살 충동을 느낀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칼을 꺼낸 일이라며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말까지 할 수 있었다.
단호하게 아이의 치료 효과를 아직 논할 수 없다고 한 의사에게 위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의사에게 진료받은 나는 금방 나을 수 있었다. 완치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괴로웠던 기간에 비해 너무나 갑작스러워 아직 확신은 없지만 이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나아졌다고 느낀다. 곧 항우울증제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든다. 물론 항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5개월이 다 되어 나은 것일 수도 있다.
또래답지 않은 강한 허세와 과도한 집중력과 과잉 충동성을 보이던 아이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놀이 치료 초기에는 허세와 고집이 ADHD 증상일 수 있을까, 기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었다. ADHD가 있다고 해도 심하지 않은 수준인 것 같은데 청소년기에 없어질 정도로 엄마인 내가 설레발을 치며 어린아이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순간적인 분노와 짜증을 강하게 표출하는 모습에 절망스러웠던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이와 나의 지난 치료 과정을 복기하다 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기분이 좋다. 다 나은 내가 더 행복하고 건강해질 우리 아이를 든든하게 지켜내는 모습, 멋진 성인으로 성장해 독립할 아이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리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