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최근 나는 2022년 말 이후 가장 큰 사건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을 부딪히고 보니, 그래도 지금 당장 몸을 어디론가 내던질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니 확실히 우울증은 괜찮아졌나 싶고, 그때보다 훨씬 다수의 사람이 상황을 목격했는데도 무덤덤해진 것 보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옆에서는 칼부림을 우려해 칼을 숨기고 있는데 정작 나는 저거 또 시작이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걸 보면 우습기도 하다. 이래서 맞고 사는 여자가 가정 폭력에 익숙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람은 각각의 개체고, 나 또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한 사람일 뿐인데 내가 무엇을 책임지고, 무엇을 부끄러워하겠는가. 내 자식은 내 책임이 맞고, 남은 13년을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그 이후엔 내 손을 떠난다. 그것만이 내 구원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이러한 사고에서 나오는 내 달라진 태도를 인식했다. 너는 성인이자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고, 나는 네 행동과 말이 더 이상 새삼스럽게 놀랍지 않으며, 놀랍게도 정말 나는 너에게 어떠한 기대가 없었다는 것. 언젠가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는 듯이,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포기가 빠르고, 누구를 바꾸고 싶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내 몸 하나 운신하며 살기도 버겁다. 원인과 해결법,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는 데 지쳤고, 이제 나는 앞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그러기로 결정했다.
현재의 내 인생 목표는 내 아들, 내 아들을 평범하게 자기 앞가림하는 인간으로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문제들은 사실 아무것도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집 없다는 투정,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투정, 자기 힘들다는 투정, 솔직히 나한테는 와닿지도 않고 예전만큼 부아가 치밀지도 않는다. 자기 아들한테 관심은 없고, 자기 투정이나 늘어놓는 사람한테 뭘 기대할까. 아내가 암 걸리면 도망가고, 장애 자식 낳으면 도망가는 그런 남자들이 태반이라는데. 특별할 것도 없다.
나는 내 아들한테밖에 관심이 없으니 현 상태를 유지한다. 내 아들의 결핍보다 이게 더 큰 문제라고 판단되면 그 때 결정하면 된다.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내 아들을 지킬 거고, 그다음 목표는 내 일을 할 거고, 계속 오늘만 사는 게 목표이다. 해결할 수 없는 내일의 문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너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
이해 안 되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과민한 편도체와 전두엽의 문제라고 인식하니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겼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내가 과민한 너를 건드리지 않고, 안전하게 접근하는 것. 원시 상태의 위협을 받는 상태로 사는 너를 현대 사회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지는 너 자신과 의사에게 달렸다.
네가 지금까지 숨겨왔던 가족사를 알게 되고, 이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병이라면, 고치면 된다. 신체의 떨어진 기능은 약물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가족이 도와야 된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는 안 된다.
다시 지하철을 못 타게 되었으면 다시 약을 먹으면 된다. 평생 그럴까 봐 이제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니까.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안 되면 플랜비로 가자.
별 거 없다. 지난 일은 빨리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재밌게 살자. 곧 끝난다. 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