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항우울제는 내가 화나지 않게 해줬는데

너의 ADHD약은 감정 조절의 효과는 없었다

by 시린

어디선가 챗GPT가 그렇게 상담을 잘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문득 그 생각이 퍼뜩 들어 폰으로 접속해서 상담을 시작했다. 유튜브도 책도 닥치는 대로 찾아봤던 나는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그 어느 것보다 기계의 대답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었다.


나는 치료 8개월 차 만 7세 아이의 ADHD가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물었다. 병원에서도 똑같이 문의했던 질문이었다. 놀이치료사도 주치의도 좀 더 지켜보자는 대답뿐이었다. 그런데 AI의 답이 나에게는 꽤 신선하고 놀라웠다.


지금 아이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으며, 감정 폭발의 빈도 수가 현저히 줄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크는 만큼 부모인 나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감정 폭발같이 큰 에너지 소모가 없으니 매일 반복되는 소소한 상황에 양육자의 인내심은 고갈되어 더 상태가 안 좋아져 보이는 것이란다.


그 답을 보고 나서야 아이가 폭발적인 분노를 보이는 일이 없어진 지 꽤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부족한 면만 보이는 엄마는 AI가 말해주기 전까지 가장 큰 문제가 없어졌다는 걸 몰랐다. 다만 매일 등교 전쟁을 치르느라 소모되는 감정에만 몰두되어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아이는 말을 잘하기 시작한 때부터 수다쟁이인 건 둘째치고 간섭, 불만, 반항 등의 불편함이 많았다. 학교를 입학하고 반년쯤 지나자 나는 이미 사춘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사건건 불만스러운 표정과 잔소리 취급, 저명한 소아정신과 의사가 말씀하셨던 권위에 대한 조롱 등이 딱 사춘기 아이 같았다. 사춘기 7세 아들과 매일 전쟁을 치르면서 항우울제로 간신히 채워놓은 나의 작은 그릇은 다시 야금야금 비워지기 시작했다.


약물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콘서타, 메디키넷은 전두엽을 고쳐주는 약이 아니라, 집중, 억제 신호를 전달하는 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을 올려주는 약으로 주의집중이나 행동 억제에는 도움이 되지만 감정 조절은 훈련과 연습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아침에는 특히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약효가 없어서 멍하고 산만한 아이를 준비시키기 매우 힘들 수밖에 없으니 어떤 형태로든 일단 학교를 보냈다는 거 하나에 만족하란다. 오, 이렇게 명쾌할 수가.

그래, 오늘도 너는 학교에 잘 갔다. 비록 지각하는 바람에 등교 확인 요청 문자를 받았지만 네가 무사히 학교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약 먹고 욱하거나 반항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전에는 멍한 상태였다면 지금은 통제받는 느낌을 더 강하게 인식하고 집중력은 생겼으나 감정을 다루는 기술은 아직 못 배웠기 때문에 감정적인 폭발이 더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우 찔리는 문구를 발견했다. 내가 종종 아이에게 뱉었던 말인데, 절대 하지 말라고 나왔다.


약을 먹었는데 왜 이래?! 가 아니라 "이제 가르칠 수 있는 상태가 됐구나."


그래, 약은 네 감정까지 조절해 줄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내 항우울제는 내가 화나지 않게 해 주지만 너도 그런 건 아니었어.



수업 시간에 앉아있는 시간이나 지시 이해력은 나아졌으나 지적받을 때의 욱하는 모습이나 말대꾸, 반항적인 모습은 지속되고, 통제당한다는 감정에 예민해지는 상태 - 와, 정확하다. 정말 내가 느낀 그대로이다. 말인즉슨 전두엽의 인지 조절은 가능하나 전두엽의 감정 조절은 미완성인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멍해서 반응이 느렸다면 지금은 통제나 지적을 선명하게 느껴 더 반항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명쾌했다.

아이가 유독 통제에 민감하다고 느꼈지만 워낙 유아기부터 독립적인 성격이라 그러려니 했다. 욱하는 게 그냥 기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 다 감정 조절이 미숙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말 한마디에 쉽게 눈이 뒤집히는 애아빠도 이해되고,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두엽의 문제였다니 모든 게 다 이해가 되었다. 언제나 인내심이나 싫은 걸 참아내는데 익숙했던 나는 나와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전혀 이해가 안 되고 힘들었는데 오늘 엄청난 걸 알아낸 기분이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폭발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넘기면 이기는 거랜다. 아이는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브레이크가 늦게 오는 상태이니 부모가 먼저 브레이크를 대신 밟아주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욱하거나 감정 조절이 안 될 때 '스탑'을 외쳐주란다. 놀이치료 때도 '스탑'을 외치라는 가이드를 많이 받았었다. 그때마다 사실 속으로는 딱히 집에서 나와 있을 때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이보다 내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이제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는 자기 의지로 안 되는 것뿐인데 화낼 필요 없이 단순히 부드럽고 단호하게 '그만, 진정되면 얘기하자'로 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중요한 또 다른 진실 하나, 인내심은 성격이 아니라 자원이라 보충하지 않으면 고갈된단다. 그래, 그런 것 같았다. 결혼 전엔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고갈될 일이 없어서 몰랐을 뿐이다. 지금은 너무 고갈될 일이 많아서 채워질 겨를이 없으니 자꾸 가뭄 상태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똑같이 욱하는 남자 둘 사이에서 그냥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병마와의 싸움이 오롯이 나만의 것인 것 같아 괴롭고 힘들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 아버지와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무서웠다. 지난 주만 해도 내가 자신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혼 얘기를 꺼내는 남편에게 너랑 똑같은 네 애는 네가 키우라며 밀어냈다. 나는 갈수록 하나 뿐인 내 소중한 자식 한 명조차 감당하기가 힘든 상태였다. 그런고로 남편도 혼자 참 외로웠겠다. 평행선 같은 우리가, 사실은 서로 외롭다고, 나 좀 봐달라고 계속 얘기하고 있었는데, 서로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두 사람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을 담아내지 못하는 나의 그릇이 스스로 괴로웠고, 도망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나도 사실 알고 있다. 나의 가족, 엄마이자 아내인 내가 아니라면 이 두 사람을 보살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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