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은 나만 그 모든것을 기억하고 있다는것.
#3. 기억의 무게는 공평하지 않다
지하철역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서, LY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3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가, 공공장소에서 저토록 처절한 눈빛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원망, 그리움, 그리고 안도감. 수만 가지 감정이 뒤엉킨 눈동자와 달리, 그녀의 눈은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했다.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그것이 LY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기억... 안 난다고."
LY가 젖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떻게 그게 기억이 안 나? 다른 건 다 잊어도, 그 말은 기억해야지."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고통으로 눈물을 참아내려는 듯했다.
"마지막 날이었어. 네가 나한테 문자를 보냈잖아. 이제 결혼한다고. 그 사람과 행복해질 거니까... 다시는, 절대로 날 찾아오지 말라고."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내 인생에 그런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나?
"나는 그 문자 하나 때문에... 지난 20년을 죽은 듯이 숨죽여 살았어. 네가 행복하다는데, 내가 나타나면 방해가 될까 봐. 소문으로만 네 소식을 들으면서, 그 호텔에서 네가 얼마나 예뻤을까 상상하면서..."
LY의 목소리가 끝내 떨렸다. 그는 그날의 절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에 밤새 술을 마시고 구토하며 울었던 20대의 어느 날을.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서 '결혼식'이라는 키워드는 전혀 다른 결과값을 출력하고 있었다.
"호텔..."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기억의 파편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화려한 샹들리에. 하얀 웨딩드레스. 웅성거리는 하객들. 그리고 끝내 열리지 않았던 신부 대기실의 문.
그날 신랑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버려졌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여자가 되어 식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오지 말라고 했다고?
"뭔가 잘못 알고 계시네요."
그녀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저는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거든요."
"...뭐?"
LY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는 숨을 멈췄다.
"그리고 당신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고요? 기억엔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건 거짓말이었을 거예요. 그날 내 곁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녀의 덤덤한 고백은 칼날이 되어 LY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그녀가 행복한 줄 알았다.
그래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홀로 남겨졌고, 그 충격 때문인지 그와의 모든 약속조차 지워버린 채 텅 빈 눈으로 서 있다.
"그때... 내가 갔어야 했어."
LY가 고개를 떨구며 흐느꼈다. 기억하는 자의 고통과 기억하지 못하는 자의 무심함이 지하철역의 소음 속에서 위태롭게 엇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