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비대칭
#2. 잔인한 안부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두 사람은 흐르는 강물 한가운데 박힌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LY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히고, 교복 대신 트렌치코트를 입었어도 상관없었다.
그는 그녀의 사소한 버릇,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는 그 각도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머릿속에선 과거의 필름이 선명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등교 버스 안에서 마주치면 꾸벅 인사하던 단발머리 소녀. '오빠, 이번 수학 너무 어려워요. 망쳤어.'라고 문자를 보내오던 그 시절의 투정들. 그는 그 모든 순간을 박제해두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후, 수소문 끝에 들려오던 소문들—어느 호텔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더라, 아주 잘 산다더라—이라는 말들이 가시처럼 박혀 그를 괴롭혔던 밤들까지도.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눈은,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맑았다. 마치 갓 태어난 짐승처럼, 그에 대한 정보값이 '0'인 눈동자.
"저를... 아세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한마디가 LY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그는 연락이 끊긴 후 그녀의 메일 계정이 삭제된 것을 보고, 바뀐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려 수없이 망설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치열했던 그리움의 시간을 전혀 모른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지난 4년간 대학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MRI, 뇌파 검사, 최면 치료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의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해마의 특정 영역이 손상된 건 아닙니다. 이건 심리적인 방어기제예요. 환자분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기억만 삭제하고 있는 겁니다. 살기 위해서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 지워야만 했던 사람이, 눈앞의 이 남자란 말인가?
"수학."
LY가 뜬금없는 단어를 뱉었다.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수학이 너무 어렵다고, 시험 망쳤다고 징징대던 꼬맹이였는데. 많이 컸네."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그 순간, 서연의 머릿속이 아닌 심장 어딘가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기억엔 없는 장면인데, 기시감이 들었다.
"우리가... 그런 사이였나요?" "너한테는 없던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어제 일 같아."
LY가 한 발자국 다가왔다. 소문 속의 행복한 신부, 잘 살고 있다던 그녀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소문처럼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잃은 아이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결혼... 했다고 들었는데."
그가 망설이다 던진 말은 안부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20년 동안 그를 가로막았던 그 '소문'의 진상을, 그는 확인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