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온도차

by 자기계발중독자

갑과 을의 온도차


"이번 프로젝트, 클라이언트 측에서 담당자를 지목했습니다."


팀장의 말에 그녀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건조하게 물었다.


"누군데요? 저는 지금 B사 경쟁 PT 준비로 스케줄이 꽉 찼습니다만." "거절 못 할 걸? 예산 규모가 달라. 그리고 그쪽 상무님이 콕 집어서 자네 아니면 미팅 안 하겠대. 포트폴리오를 아주 인상 깊게 봤다나."


상무급 임원이 대리인 나를 지목했다?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지만, 이내 인정욕구가 그 의심을 덮었다. 승진을 앞둔 시점이었다. 굵직한 프로젝트 하나만 더 성공시키면 차기 과장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알겠습니다. 미팅 잡으세요."

3일 뒤, XX 기획사 대회의실. 그녀는 완벽한 비즈니스 정장 차림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점검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수행비서들의 안내를 받으며 클라이언트 측 대표단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프로젝트를 맡게 된..."


그녀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프로페셔널하게 유지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0.5초 정도 흔들렸다.


상석에 앉은 남자. 말끔하게 넘긴 머리, 몸에 딱 맞는 최고급 수트, 그리고 여유로운 미소.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낡은 코트 자락을 붙잡고 울던 남자, LY였다.


"반갑습니다. 이사 LY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지하철역에서의 지질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철저히 '갑(甲)'의 위치에서, 우아하고 여유롭게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의 손을 응시하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고 그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이사님."


손바닥이 닿았다. 그의 손은 뜨거웠고,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그녀는 알았다. 이 남자가 자신의 뒷조사를 끝내고, 가장 거절할 수 없는 방식인 '일'을 미끼로 덫을 놓았다는 것을.

'나를 시험하겠다 이건가.'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기억은 없지만, 승부욕은 있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 아니, 그가 공(公)을 이용해 사(私)를 채우려 한다면, 자신은 철저히 공(公)으로만 응대해 그를 질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미팅 시작하시죠."

그녀가 먼저 손을 뺐다. LY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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