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겹쳐진 환영 (The Overlap)
프레젠테이션: 겹쳐진 환영 (The Overlap)
회의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LY의 회사, 마케팅 본부장은 팔짱을 낀 채 그녀의 기획안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리님, 기획안은 화려한데 실현 가능성이 있습니까? 우리 브랜드는 4050 타깃입니다. 이런 트렌디한 감성은 리스크가 커요. 혹시 이사님(LY)과의 친분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는 거 아닙니까?"
노골적인 텃세였다. LY가 나서서 방어하려 입을 떼려는 찰나, 그녀가 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녀의 표정은 흔들림 없이 건조했다.
"데이터로 말씀드리죠."
그녀가 리모컨을 누르자 화면이 전환되었다. 4050 세대의 모바일 소비 패턴과 키워드 분석 데이터가 방대한 양으로 펼쳐졌다.
"본부장님이 말씀하시는 '리스크'는 감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져온 건 '팩트'입니다.
현재 4050이 가장 반응하는 키워드는 '회춘'이 아니라 '확장'입니다. 그들은 늙어 보이길 원치 않는 게 아니라, 도태되길 원치 않는 겁니다."
그녀는 정확한 딕션과 냉철한 논리로 좌중을 압도했다. 질문이 들어올 틈도 주지 않고, 예상 반론까지 모두 차단하는 완벽한 디펜스였다.
LY는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레이저 포인터로 화면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하는 그녀의 모습. 그 순간, LY의 눈앞에 과거의 한 장면이 환영처럼 겹쳐졌다.
(LY의 기억).....
대학가 뒷골목, 24시간 뼈다귀 감자탕집. 뿌연 수증기가 가득 찬 시끌벅적한 식당. 그녀와 LY, 그리고 그녀의 대학 동기이자 LY의 단짝 친구였던 K. 셋은 언제나 함께였다.
"야, 이거 봐라! 이게 바로 뼈 바르는 기술이다!"
캡모자를 푹 눌러쓴 20대 초반의 그녀가 젓가락으로 감자탕 뼈를 가리키며 으스댔다. 술이 몇 잔 들어가 양볼이 핑크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LY에게 고기를 얹어주었다.
"오빠는 도련님이라 이런 거 바를 줄 모르지? 내가 발라줄게, 많이 먹어!"
그녀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20대의 힙한 패딩 점퍼, 눌러쓴 캡모자,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던 비누 냄새와 음식 냄새가 섞인 따뜻한 공기. 그날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이상입니다."
현재의 그녀가 발표를 마쳤다. 감자탕 뼈를 가리키던 젓가락 대신 레이저 포인터를 든 손, 캡모자 대신 완벽하게 세팅된 와인색정장. 붉게 달아오른 볼 대신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손질된 긴 웨이브.
회의실 안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본부장조차 헛기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승리했지만, LY는 패배감을 느꼈다. 저렇게 완벽한 여자가 되었는데, 내 기억 속의 '그 장난기 많던 소녀'는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