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신곡>은 작가 단테의 지옥, 연옥, 천국 여행기다. 운율이 있는 서사시로 쓰였으며, 이에 한자문화권에서 ‘신성한 노래’이라 불린다. 원어로는 ‘신성한 희극’이라는 의미인데, ‘신성함’을 뜻하는 ‘Divinia’는 훗날 붙었다. 단테 스스로 붙인 제목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희극’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제목이다. 단어 하나 추가한 것으로 더없이 성스러운 제목이 되었다.
<신곡>은 인류의 암흑기라는 중세시대 작품이다. 실제로 내용 중에는 당시 세태에 대한 한탄이 매우 많다. 단테 자신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최후의 시간’으로 여겼다. 더 이상 천국에는 남은 자리가 없고 인류는 최후의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세상은 정쟁과 부패를 비롯한 온갖 악덕으로 썩어가고 있다. 단테는 가상의 지옥과 천국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신곡>을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신곡>은 경전에 버금갈 정도로 기독교를 찬미하는 작품이다. 이에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지나치게 종교 맹목적인 작품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당시 유럽에서 기독교는 삶 그 자체이자 진리였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단테는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이라 할 만큼 교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추상적이면서 신성한 개념이었던 지옥과 천국, 영혼, 천사 등을 실체적으로 묘사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신곡>은 단테가 연인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영혼들과 천사들, 그리고 끝내 하나님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매우 간단한 요약이지만 실제 작품의 난이도는 정반대다. 지옥, 연옥, 천국에 대한 단테의 상상력과 더불어 성서, 그리스 신화, 그리스와 로마의 서사시, 유럽의 역사,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당시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정치적 상황, 황제와 교황의 갈등, 종교의 부흥과 타락, 그 밖에도 수많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역사 속 인물부터 단테 주변의 소소한 인물들까지 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일일이 다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본문보다 주석의 내용이 더 긴 것 같기도 하다.
내용뿐만 아니라 작문 자체도 난해하다. 현대의 간결하고 전달력 있는 문체와는 정반대로, 문장이 매우 길며 거의 모든 문장에 비유가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번역되어 있음에도 한 번에 문장을 이해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소포클레스의 비극들을 읽어 두어서 익숙한 내용과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단테의 지옥은 지구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지표면에서 시작해 지구의 중심까지 이어지며 거대한 역원뿔형을 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고 가장 뜨거운 지구의 중심에는 타락천사 루키페르(루시퍼)가 살고 있다. 루키페르를 지나면 동굴이 나오고, 동굴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당시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남반구가 나오는데, 당시 사람들은 대륙이 북반구에만 있고 남반구에는 바다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대척점에는 섬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연옥이다. 이 섬은 지옥과 반대로 원뿔모양 산이며, 꼭대기에는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지상천국이 있다. 그리고 이곳을 통해 천국으로 갈 수 있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만큼 보다 더 기하학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당시 하늘에 떠 있던 천체들에 대해 당대 사람들이 받아들인 대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항성이 각각의 하늘을 가지고 회전하고 있다. 여기서 항성은 달, 태양, 행성들을 제외한 모든 별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별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회전하고 있지만 달과 태양, 행성들은 각자의 궤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특별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각 행성들은 자신의 하늘을 가지고 있는 것. 항성천 다음에는 모든 하늘을 돌리는 원동력이 되는 원동천이 있고 그다음이 하느님이 살고 있는 지고천이다.
아주 간단하게 늘어놓았으나 이 지옥, 연옥, 천국은 매우 세세히 분류되어 있으며 각 단계별로도 환경이 다르다. 이런 기하학적인 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만들어낸 단테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신곡>은 인간들에게 지옥과 천국의 모습을 구체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지옥과 천국의 모습은 단테의 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요약하자면, 지옥에서는 악인들이 벌을 받고, 연옥에서는 천국에 가기 위해 속죄를 한다. 그리고 천국에는 선한 영혼들이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단테는 각 지역을 거치며 그곳에 사는 영혼들로부터 그들이 왜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그로부터 지옥이나 연옥에 가지 않으려면,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셈이다. 또한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의 기도가 영혼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내용을 통해 신앙심을 고취하기도 한다.
특히 단테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엄청난 집요함을 보인다. 세 곳을 여행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마주치는 영혼들에게 질문을 던져대는데, 지옥과 연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혼들도 예외는 아니다. 단테의 질문에 가장 고통받았을 영혼은 역시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다. 그는 단테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는 것도 힘들었을 테지만, 영혼들과 노닥거리는 단테에게 ‘그만 좀 하고 어서 가자’고 말하기 바쁘다. 호기심 많은 아이와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한 기분도 든다.
미디어에서도 그렇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곡> 세 편 중 지옥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평한다. 역시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주는 효과가 큰 것일까? 지옥 편의 묘사가 매우 상세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누가 어떤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갔는지보다, 누가 어떤 나쁜 일을 해서 지옥에 갔는지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그런데 나는 세 편 중 천국 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천국에 가고 싶어서라기보다, 단테가 이 모든 여정을 통해 무엇을 얻어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질문들로 영혼들과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괴롭히면서 그가 얻은 깨달음은 그의 눈에 축복을 내린다.
단테는 살아있는 몸이기에 영혼들의 세상에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영혼들에 비해 몸도 무겁고 신체가 주는 고통과 불편함을 짊어지고 있다. 길을 모르는 것은 물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영문도 모른다. 위대한 안내자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못하고 아케론 강변에서 카론에게 노로 두들겨 맞고 쫓겨났으리라. 다행히도 베르길리우스와 천사들,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도움을 받아 한 계단씩 나아간다. 천국의 끝자락에 다다를수록 단테는 점점 삶의 진리와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깨달아 간다. 그가 천국에 다다랐을 때, 천사들과 선한 영혼들이 내는 빛이 너무 눈이 부셔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그럴 때마다 단테는 위대한 영혼들이나 베아트리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더 훌륭한 눈을 얻고, 결국 처음엔 천사조차 제대로 볼 수 없던 단테가 빛 그 자체인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 ‘눈’은 세상에 대한 깨달음과 신념, 신앙심 등 다양한 가치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단테는 자신이 만든 이 가상의 여행 속에서 ‘눈’으로 표현한 삶에 대한 깨달음을 독자에게, 그리고 세상에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부패하고 타락해 가던 교회와 세상에 최초의 가르침을 일깨우고, 진정한 가치를 향해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단테는 정말 자신의 작품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건 단테 본인만이 알 일이다. 다만 <신곡>의 내용과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결국 단테의 상상력과 지식, 지혜로부터 나온 것인 만큼 대부분의 인간들보다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가 신곡을 통해 인류에게 준 가르침은 종교를 넘어 온 세상을 이롭게 하였으므로, 생을 마감한 이후 그는 자신이 창작한 천국에서 고대하던 베아트리체를 만나 영광을 누리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