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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의 Feb 14. 2016

무너져내린 삶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너에게

두서 없는 몇줄

두서없는 몇 줄.


나는 유명인의 명언이나 글귀 같은 것들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이었다. 대체로 항간에 떠도는 명언이란 그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의 경로에나 어울리는 말일뿐,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고작 25년 살아놓고 하기엔 건방진 말이겠지만, 명언 한마디에 위로받거나 한마디를 인생의 신조로 삼아놓기에는 너무 굴곡진 삶을 살았다.


오늘, 몇 년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요즈음 바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다. 바빠서 피곤했고, 바쁘지 않더라도 마음이 지쳐서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밤, 갑작스레 잡힌 약속에 지갑 하나만 들고 달려 나갔다. 지쳐있는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서라도 약속을 나가게 만든 한마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잘 지냈어? 라는 일상적인 말처럼, 초연하게 던진 한 마디의 말이.


나 자퇴했어.


허겁지겁 달려 나가 만난 카페에서, 근 몇 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내 친구는 초연한 얼굴로 말했다. 다 그만두었다고. 대학이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자신이 마주한 문제에 대해, 대학은 답이 아니었다고.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화 좀 내달라는 친구에게 순간적으로 몇 몇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어쩌려고 그랬니. 그래도 명색이 대졸을 위해 조금만 더 버텨보지. 그러다 그 친구의 결심 앞에 사회의 시선과 기준들을 먼저 생각한 나 자신에 대해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는 그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 따위가 감히 말로 다 위로할 수 없는 그 친구의 힘겨웠을 시간들을. 남들에겐 4년이지만, 그 친구에게는 8년, 12년과도 같을 그 시기에 대해서 내가 감히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결국 잘 한 선택이라는 말도, 어떤 충고도 해주지 못한 채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노트북 앞에 선 이 순간에도 그 친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한 끝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인 것 같다.  


나도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답답한 시기가 있었다. 나는 서툴고, 조금만 움직여도 한계에 부딪히는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학교 근처에 살았던 그 여름. 수 없이 혼자 아무도 없는 학교 교정을 몇 바퀴씩 돌고는 했다. 땅만 보고 도서관에서 학생회관. 계속 해서 걷다 너무나 지쳐서 걷는 것조차 힘이 들던 어느 밤, 주저앉듯이 앉았던 교정의 한 의자에서, 학생회관에 걸린 현수막의 글귀 하나에 시선이 가닿았다.


그렇게 명언이나 글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는데, 그때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것도 말이고, 사람을 일으키는 것도 말이었다. 그 글귀를 보고, 앉은 자리에서 눈이 붓도록 울고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가는 길, 나는 내가 위로 받았음을 느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나는 계속 그 글귀를 보러 한 밤중의 교정으로 나갔지만 글귀가 적힌 현수막은 곧 철거되었다. 계속 빈 벽만 보게 되었지만, 내가 잊지 않았기에 그 글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삶이 버거운 날이면, 늘 그 글귀를 머릿속에 되뇌이곤 한다.


힘내라는 말 대신, 꼭 이 글귀를 너에게 전해주고 싶다.

  

추운 겨울 지나, 꽃 필 차례가 바로 네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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