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의 쓸모>가 출간된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책 쓰기에 골몰해 있을 때는 출간 후 어떤 심경일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시원 섭섭할 테고, 어쨌거나 수도 없이 손을 댄 원고를 매듭짓고 나면 세상 홀가분한 마음이겠거니, 그리 쉽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책이 세상에 나왔고, 저는 의외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책에 대한 세상의 반응에 날카롭게 촉을 세우고 이토록 민감해질 줄을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라인 서점 Yes24 앱에 들어가 판매지수를 확인하고, 알라딘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를 살핍니다. 오프라인 교보와 영풍 매장에 책이 몇 권 놓였는지, 또 몇 부가 나갔는지를 점검합니다. 그러나 수치로 드러나는 판매고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책을 만난 독자들의 생각과 반응이었습니다. SNS에 새롭게 뜬 피드와 포스팅은 없나, 어떤 내용의 책 리뷰가 올라왔나살피기 위해 하루에 몇 번씩 온라인 세상을 들락거립니다. 영락없이 길거리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두리번대느라 제 갈 길을 못 가고 있는 사람 꼴이었지요.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
정작 오프라인 서점을 찾은 것은 책이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였습니다. 예기치 않게 자가 격리 대상이 되어 집을 떠날 수 없었고, 크고 작은 사정으로 한동안 발목이 묶여 있었던 탓입니다. 출간 후 한 달 무렵 되는 날 드디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음을 했습니다. 책은 에세이 매대뿐 아니라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 전시 코너에 놓여 있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책은 광화문, 강남, 잠실, 목동점을 포함, 교보문고 주요 지점 10곳의 동일 매대에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만난 날, 옆지기와 커피와 빵을 나누며
표지 빛깔이 꼭 로제 떡볶이를 연상시킨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표지 일러스트조차 떡볶이 솥을 주걱으로 젓고 있는 이의 모습이지요. 책 빛깔이 매대에서도 눈에 확 띄는 게 '색깔 있는' 책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자식 같은 책을 세상에 내보내 놓고, 나름 잘 헤처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비로소 할 일을 한 것만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서점을 빠져나와서는 그간 물심양면으로 출판을 뒷바라지 해준 옆지기와 커피와 팥빵을 즐겁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조금 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CBS 음악 FM '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에 제가 보낸 손편지가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허기의 쓸모>에 관한 사연입니다. 책 내용 가운데 <라디오, 주방을 틀다>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날마다 라디오와 함께 주방에 선다는, 제 주방살이의 소박한 고백이 담긴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흥에 겨운 음악과 구수한 수영 언니의 입담 없이는 점심 준비가 안 되거든요. 수영 언니가 이 꼭지를 읽으셨다고, 그러면서 "이런 책은 너무나 훌륭한 책인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말하는데, 온몸을 타고 도는 이 짜릿한 감동이란!
주방에서 복닥이며 살아가는 일상은 여전하지만, 삶이 조금은 특별해진 느낌입니다. 밥상을 둘러싼 저의 작은 이야기 덕분에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밥을 그리는 사람, 밥 차려주는 이의 정성과 노고를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람, 엄마 생각이 나 한참을 울었다는 분, 그리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분. 책을 읽고 보내오는 독자들의 따뜻한 감상에 가슴이 자주 먹먹하고, 또 자주 뭉클해 옵니다. 세상은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고, 밥 짓는 온기로 데워진 주방처럼 훈훈하게 달궈져 있음을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출간 후유증을 크게 앓았던 걸까요? 얼마 동안은 예전처럼 책상 앞에 제대로 붙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제때 새 글을 써내지 못하는 것으로 크게 괴로워하자, 저를 아끼는 몇 분이 '이 시기를 맘 편히 즐기라'라고 말해주더군요. 그제야 깨달아졌습니다.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온 저 자신이 잠시 멀미를 일으킨 것을요. 창 밖 새로운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도, 온몸으로 전달되는 낯선 속도감에 적응 못해 잠시 어지러웠던 것을요.
뒤늦게나마 힘주어 곧추 세웠던 허리를 풀고 등받이에 편안히 기대앉습니다. 지긋이 눈을 감았다가는 다시 눈을 떠 편안한 마음으로 창 밖 풍경을 내다봅니다. 천지가 온통 노랗고 붉은 기운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소리도 없이 가을이 번지는가 싶더니, 어제오늘 내린 비가 자꾸만 겨울을 재촉합니다. 가을이 지나가는 중인지, 더 깊은 가을로 익어가는 중인지 이마저도 혼미합니다.
엊그제 딸아이와 함께 새로 담가 둔 깍두기가 얼마나 익었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무가 설익어 아직 아린 맛이 남아 있을지, 새콤한 맛으로 맞춤 맞게 익어 있을지, 뜨끈한 냄비밥 한 솥 지어 고슬고슬한 쌀밥 위에 얹어 먹어 볼 참입니다.
이제는 글쓰기의 영감이 가득한 나의 내밀한 공간, 주방으로 달려 가봐야겠습니다. 그래야 글쓰기의 제 자리로도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