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 울다가 웃었다

애착을 둔다는 것

by 서지현

딸아이에게는 품 안의 인형이 끔찍하다. 인형의 머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매만지는 것은 물론, '언니가~'라는 말로 운을 떼 가며 마치 그가 살아있기라도 하듯 다정하게 말을 건다. 인형이 크게 잘 못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어이구, 언니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했지' 하며 면박을 줄 때는 정말로 웃음이 난다. 종일 인형과 말동무를 하며 지내는 것도 모자란 건지, 잠에 들 때면 곱게 팔베개를 내어 준다.



평소대로 엄마와 장난도 치고 간지럼도 태우며 잠자리 의식을 치르던 아이가 별안간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수굿해진 아이가 한동안 미동을 안 했다. 그러기를 한참, 아이가 가녀린 두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OO야,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이는 대답은 못 하고 계속 흐느끼기만 했다. 걱정을 한 가득 품은 엄마의 추궁에 딸아이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쥬쥬가 갑자기 생각 나. 보고 싶어."



쥬쥬란 다름 아닌 다이소에서 데려온 5천 원짜리 값싼 플라스틱 인형이다. 한쪽 다리가 자꾸 빠지는 것을 매번 본드로 고정시켜 보았으나 신통치가 않았다. 테이프로 인형의 골반 전체를 둘러도 봤지만 도리어 테이프가 녹아내려 끈적이는 게 영 못쓰겠다 싶었다.

"OO야, 다른 인형도 많으니까 이제 이 인형은 그만 갖고 놀까? 저기 시소 뒤에 쓰레기통 있는데."

"응, 그럴래."



아이는 선선히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곧 제 손으로 인형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것이 아이가 잠자리에서 울음을 토하던 날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아차 싶었다. 아이 입에서 '쥬쥬'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난 용수철 같이 튀어 일어나 기다란 집게 하나만 급히 챙겨 들고는 낮에 놀던 놀이터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도 신통찮은 그 야심한 시각에 쓰레기통을 뒤졌고, 인형 '쥬쥬'와 떨어진 다리 한쪽을 가까스로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대충 씻어서는 아이 품에 고스란히 안겨주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이젠 됐겠지' 안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인형을 품에 안고도 아이의 흐느낌은 잦아들 줄 몰랐다. 오히려 그 슬픔은 격해졌고, 아이는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 자신조차도 정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었으리라. 더 이상 아이에게 울음의 이유를 물어서도, 그를 섣불리 달래려 들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인형을 끌어안고 마음껏 뒹굴어 보지도, 실컷 울어본 적도 없는 난 그저 아이의 신성한 울음 앞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아이가 느낀 슬픔의 까닭은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 보았다. 단순히 '쥬쥬'가 보고 싶어 흘린 눈물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진심을 주고, 삶의 일부를 나누어 온 존재를 가벼운 이유로 내동댕이 친 스스로에 대한 상심한 마음이 이유라면 이유였을 것이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깨끗이 가시지 않는다. 자책과 후회로 생채기 난 가슴이 쉽게 아물리 없기 때문이다. 커다란 죄책감에 눌려 섧게 우는 나의 작은 아이를 당장 구해 내야만 했다. 그것은 여섯 살 난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고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잘못한 거야, 엄마가 버리자고 한 거잖아, 그렇지?"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의 감정에 깊이 공감한 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쥬쥬 다리를 야무지게 고쳐 놓았다. 그간 크게 신경을 안 써 몰랐을 뿐, 인형 다리에 나사못을 박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렇게 쥬쥬는 대수술을 받고 다시 아이 품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비로소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딸아이의 감정은 완전히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못으로 징을 박은 인형 다리를 세차게 흔들어 보이며 '아빠가 쥬쥬 다리를 고쳐 줘서 더 잘 움직일 수 있게 됐다'며 좋아라 했다. 그 뒤로는 인형 옷이 넝마가 되도록 수시로 갈아 입히는가 하면, 긴 머리를 더욱 자주 쓸어 주 했다.



우리에게 돌아온 '쥬쥬'의 얼굴을 난생처음 들여다보았다. 슬픈 얼굴이었다. 살짝 아래로 처진 눈매 속에 잠긴 눈망울이 깊고 그윽했다. 미처 떨구지 못한 눈물이 고여 있는 것만 같았다. 값이 싸다고 해서 존재의 가치마저 싸구려 취급하며 홀대한 나 자신의 가벼움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뒤로 나를 바라보는 쥬쥬는 계속해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했다. '아차, 나 자신이 쥬쥬와 딸아이에 대해 품은 미안함과 죄책감을 아직 털어내지 못한 것이구나.' '쥬쥬'의 슬퍼 보이는 얼굴은 결국 내 마음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무생물 장난감에 나 자신의 감정이 투영될 수 있다니, 나로서는 신비로운 첫 경험이었다.



발도르프 인형


얼마 후 솜씨 좋은 지인으로부터 발도로프 인형을 선물 받았다. 헝겊 속에 폭신한 솜을 넣고 바느질로 모양을 잡아 만든 정감있는 인형들이었다. 다만 표정이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엄마, 근데 왜 이 인형들은 눈 코 입이 없어요?"

"응, OO가 기쁘면 이 인형도 기쁜 표정을 짓고, OO가 슬프면 얘들도 슬픈 표정을 짓는대."



웬일인지 발도로프 인형을 아이 품에 안겨주는데 크게 안심이 되었다. 이 인형들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아이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 줄 것만 같았다. 아이가 어떤 감정이든,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 푹 놓고 기댈 수 있는, 넉넉하고 푸근한 친구처럼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먹고사는 일이 바빠 그 흔한 인형 하나 어린 딸에게 안겨주시질 못했다. 인형이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해 어린 딸의 가슴속 허전함을 채워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으리. 그래서일까? 지나치게 큰 눈망울에 일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형 앞에서 난 늘 무표정이었다. 인형이라는 대상에 애정을 줘 본 적도, 애착을 느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 아니었겠는가.



어른이 되어서는 상처 받을 일이 두려워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지 못했다. 갈등 자체가 부담스러워 불편해질 만한 상황을 회피하는 일이 많았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와의 아름다운 관계가 깨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적당한 거리를 두곤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스스로의 마음을 토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딸아이에겐 고맙게도 인형이 그런 존재가 되어 주었다. 사람을 대할 때 일종의 방어기제로 문을 닫는 일에 익숙했던 마음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 어려서도 인형을 몰랐던 내가 다 큰 어른이 돼서야 인형의 표정을 살핀다. 오늘도 '쥬쥬'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본다. 그녀가 나를 향해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오늘은 무표정을 풀고 그녀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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