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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Dec 28. 2021

소리 나는 배드민턴

아날로그는 유희다

소리 나는 배드민턴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이 있을까 싶은 어느 눈부신 가을, 난데없이 자가격리 통보가 날아들었다. 우리 가족은 졸지에 한 공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 좁은 집구석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에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뜬 남매는 좋아하는 학습 만화 몇 권을 가져다 읽고, 그림 몇 조각을 그려냈다. 지지든, 볶든 시간을 함께 때울 친구라곤 저희들뿐인데, 그마저 다툼이라도 일면 놀이는 가차 없이 중단됐다. 무료함으로 시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자극이라도 필요하겠다 싶으면 처방 삼아 TV 시청을 허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소대로 꼭 40분 분량만큼만. 그러나 곧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틀어주지 말 걸. 짧기에 더욱 달콤한 만화 시청은 강렬한 에스프레소 한잔 뒤 찾아오는 무기력처럼 아이들을 한층 나른하게 만들었으니. 아들은 상황이 더 안 좋았다. 맘껏 몸을 놀리지 못한 아이는 거의 병이 날 지경이었다.



“배드민턴은 괜찮지 않을까?”

그것은 기껏 내가 생각해 낸 대안이었다. 엄마의 제안에 아들은 주섬주섬 두 개의 라켓과 셔틀콕을 챙겨 왔다. 거실 바닥에 폭신한 매트 두 개를 나란히 붙이고 있는 대로 이불을 가져다 사이사이 드러난 바닥 틈을 메웠다. 그러나 7-8평 남짓 되는 거실 공간을 그라운드 삼기에 경기는 제약이 많았다. 깃털을 달고 날아오른 공은 툭하면 2미터 남짓의 천장을 두드렸고, 벽을 박았으며, 공간을 두른 가구 위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좁은 반경에서 부지런히 공을 쫓던 라켓마저도 수시로 가구에 부딪히며 맥을 못 추고 있었다.



“휴, 이대론 안 되겠다. 이기는 게임 말고, 오래 주고받기. 콜?”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란 의미 없는 일. 우리는 경쟁이 아닌,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호흡하는 메이트가 되어야 했다. 힘을 합해 어떻게든 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걸 목표로 삼기로 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두 선수는 라켓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마치 은밀한 암호를 주고받듯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공을 최대한 직선거리로 보내야 했다. 공을 후려친다거나 방향을 급하게 바꾸는 건 금물이었다. 한 사람이 짧게 공을 날리면, 상대는 제 품에 날아든 공을 가볍게 받아치는 식이었다. 공을 반듯하게 내보내고, 날아드는 공을 틀림없이 받아내기 위해 모든 신경을 끌어 모았다. 그렇게 우리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공을 다루는 요령에 차차 익숙해져 갔다.



공이 일정한 리듬을 타며 공중을 날았다. 

‘팅 통 팅 통’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경쾌한 실로폰 소리가 났다. 야외에서 공을 다룰 때는 알아채지 못했던 맑고 청아한 음이었다.

‘팅 통 팅 통’

고인 물 위로 물방울이 일정하게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엄마, ‘도미 도미’ 소리가 나지 않아요?”

아들도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아들이 굳이 ‘도’라고 표현한, 음가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건 내 쪽이었고, 아들이 쥔 라켓에서는 한층 높고 명랑한 소리가 났다. 아마도 라켓마다 가진 탄성이 다른 때문이리라.



가끔 ‘땡’ 치는 소리도 났다. 공이 라켓 망을 비켜나 철제 테두리를 때리면서 내는 민망한 소리였다. 애초에 공 겨냥과 타격이 잘못됐음을 라켓이 즉시 알려주는 것 같았다. ‘땡’을 치고 나면 공은 멀리 날지 못하고 예상대로 가까운 발치에 떨어졌다. 그러자면 라켓을 제멋대로 휘두른 자, 가차 없는 ‘땡’ 소리에 그만 머쓱해지곤 마는 것.



‘땡’도 ‘땡’이지만 ‘딱’ 소리의 사정은 더 기구했다. 가끔 난데없이 날아든 공이 이마나 머리통에 딱밤을 놓았다. ‘딱’ 소리를 동반한 커다란 타격에 눈물이 핑 돌면서 머리가 ‘띵’ 울렸다. 문자 그대로 ‘딱한’ 소리였다. 그 ‘딱’한 꼴에 상대가 폭소를 터뜨려도 기분 나빠할 겨를이 없었다. 근거리에서 날아든 강하고 급한 공의 타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게 되는 탓이었다.



아들은 급기야 파샵(#F) 소리의 정체를 밝혀내고 있었다. 공이 라켓의 테두리와 네트, 그 중간 어디쯤을 건드릴 때면 ‘땡’도 아니고 ‘팅(혹은 통)’도 아닌 제법 피치가 높은 소리가 났는데, 그 음이 파샵(#F) 음가일 거라 했다. 음감이 없는 나로선 그런가 하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울 뿐이었다.



가끔은 공을 제대로 못 받은 라켓에서 ‘툭’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기도 했다.

“아들, 그러면 이 ‘툭’ 소리는 뭐지?”

“엄마, 그거 몰라요? 피아노 뚜껑을 함부로 덮을 때 나는 소리지.”

“허.”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공은 자주 경로를 이탈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튀기는 거센 빗발처럼 하얀 깃털을 단 그 작은 공은 집안 곳곳을 오가며 통통거렸다. 천정에 곱게 달린 세라믹 등을 쳐서 청아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교구장에 누운 우쿨렐레의 가지런한 현을 퉁겼다. 그런 공의 예측불허 활약 뒤에는 숨은 몸짓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호흡하며 빚어낸 서툴지만, 조화로운 몸짓이었다.



도, 미, 땡, 탁, 툭... 공간을 울리는 이 다채로운 음이 몸속 운동 세포를 하나하나 흔들어 깨웠다. 상대의 눈빛과 의중을 넘어, 공이 퉁기며 내는 소리에 주목하고 있었다. 어느새 공이 라켓에 닿으며 나는 소리만으로도 공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감각에의 몰입이 선사한 선물이었다.



작은 공간, 몰입의 유희에 취했다. 자유를 잃었다며 한할 일이 아니었다. 정작 필요한 건 밖으로, 밖으로의 에너지 발산이 아닌, 더 깊은 내면으로의 몰입이었을 것이다. 내 안의 고요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우리만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마치 이 작은 공간에서 곱게 수렴되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의 조화처럼.



땀구멍이 열리고 감각이 열린 끝에 마음이 만개한다. 아날로그는 감각의 유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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