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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Dec 15. 2023

화려한 파티일수록 뒤태가 추하다

파티룸을 청소합니다(2)

주말을 코앞에 둔 금요일 오전,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한 시간 알바를 마치는 대로 카페에 가 쓰다만 글을 이어 쓸 계획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파티룸의 특성상 청소가 매일 있는 건 아니다. 주말은 늘 예약이 차지만 주중은 비어 있는 날이 많다. 손님의 부류도 갈린다. 주중 손님은 대개 판을 크게 벌이지 않아 뒤가 깔끔한 편이다. 바베큐장은 아예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테이블 정리와 쓰레기 비우기 정도로 공간이 원상 복구되는 일이 많다. 상대적으로 마음이 푸근해지는 금요일 저녁을 기점으로 주말 동안은 파티의 농도가 진해진다. 그만큼 청소의 강도도 세진다는 뜻이다. 원 없이 고기를 굽고, 밤을 새우며 즐기고 간 뒷자리에는 그만큼 많은 오물과 쓰레기가 남는다.



사장과 이야기가 잘 되어 주중에만 일하기로 한 건 무척 잘한 일이었다.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인 면에서 한결 부담을 덜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서 밝혔듯이 알바를 뛰고자 한 동기는 단순히 돈이 아니었다. '계속 쓰는 삶'을 살기 위해 마음에 동력이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을 뒷받침할 소소한 삶의 장치가 필요했었다. 그것이 내겐 하루 한 잔의 커피값을 버는 일이었다. 정말로 딱 그만큼이면 되었다.  






주중 일이니까 오늘 청소도 가볍게 끝나겠지? 나는 의심 없이 파티룸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길로 폭탄을 맞고야 말았다. 그것도 핵탄두급으로다가 제대로.




밤새 벌어졌을 진한 유흥의 흔적이 고스란히 눈앞에 드러났다. 쾌락과 탐욕의 뒤태는 추했다. 홀은 폐허를 방불케 할 만큼 참혹했고,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게 초토화 돼 있었다. 테이블마다 먹다 만 음식물의 잔해가 흉하게 들러붙어 있고, 밤새 출렁였을 술잔은 부한 거품이 꺼진 채 노랗고 허연 액체와 함께 정지돼 있었다. 설거지는 고사하고 화장실이면 화장실, 바닥이면 바닥,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곳이 없어 보였다. 아예 파티룸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인부 몇이 달라붙어 한 이틀 대청소를 해야 할 만큼 역대급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눈앞 참혹상을 날래게 찍어 사장에게 전송하고는 연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장님, 오늘 상황이 좀 많이 심각한데요. 한두 시간으로 될 일이 아니에요."

"그래요? 큰일이네요. 바로 한 시간 뒤에 예약 손님 오시는데..."

"네, 뭐라고요?"

보통은 공간 뒷정리를 위해 최소 2시간은 간격을 두고 손님을 받지만, 그날 예약에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 사장의 설명이었다. 누구의 도움이라도 절실했지만, 사장조차 당장 달려올 수 없다 했다.

"최대한 초능력 발휘해 볼게요."



그러나 역시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얼마 안 있어 그날 파티룸을 예약했다는 여성 한 분이 올라왔고, 그녀 역시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곧 사태 파악을 한 그녀는 진한 핑크빛 고무장갑을 야물게 끼더니 테이블로 달려들었다.

"제가 해야 하는데..."

"아 근데, 회사 워크숍이라 곧 사람들 우르르 올라올 거라서요."  



손님과 알바생이 함께 팔을 걷어붙인 꼴이라니, 상황은 절박했고 시시비비를 가릴 여유란 없었다. 서비스의 주체와 객체가 한데 뒤엉켜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진땀을 빼며 온갖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는 그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화를 내는 것조차 잊은 것 같았다. 이번 워크숍의 장소 섭외를 맡은 사람으로서 사내에서 그녀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위기일 터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서 눈앞 부조리가 종결되는 것만이 그녀가 살 길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 무렵 가까스로 한 개 층 청소를 마쳤다. 빔 프로젝트 사용이 가능한 홀이 있는 층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혼돈과 무질서의 장소.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기분좋은 인사들을 나누며 당연하듯 의자 하나씩을 꿰찼다. 잠시나마 나의 동지가 되어 주었던 그녀도 짐짓 태연한 제 자리를 찾았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나는 아직 손도 못 댄 설거지거리를 가만 싸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에서 기본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마저 남은 한 개의 층과 바베큐장을 손보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홀로 외로운 두 시간을 더 견뎌야만 했다.




카페 아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백팩의 무게가 더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노트북을 열기도 전 아침의 모든 생기와 기운을 소진한 것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난장판이 된 파티룸만큼이나 심하게 무너진 마음의 복구가 급선무였다.



곧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 일로 큰 곤혹을 치뤘을 그는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그는 미안하다, 고생 많으셨다 거듭 말하며 오늘 같은 일을 대비하기 위해 백업인력을 구해 놓겠다고 했다. 이제 막 시작한 사업장을 차질 없이 꾸리기 위해 그는 한없이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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