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기 전 자주 상상하곤 했었다. 외국땅 입성에 필요한 긴 수속과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나면 이미 계약을 끝내 놓은 멀끔한 미국집에 들어가 폭신한 침대 위에 노곤한 몸뚱이를 척 누이는 장면을. 시차 적응에 대한 걱정일랑 잠시 접어두고 몸이 원하는 만큼 한잠을 즐기다가, 그러다 눈이 반짝 떠지면 정성껏 꾸려온 캐리어 짐을 하나, 또 하나 느긋하게 풀어헤치는 그런 흐뭇한 일들을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입성에 성공한 날. 애석하게도 그날은 여태 간직해 온 무지갯빛 상상이 무참히 깨어진 날로 기억된다.
미국집에 도착해 1층 차고지 문을 열었을 때 우린 이미 이상한 낌새를 채고 말았다. SUV가 들어서고도 남을 넉넉한 규모의 차고지는 차량이 놓일 가운데 자리를 겨우 빼곤 크고 작은 쓰레기 더미로 이미 점령당한 채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이전 한국인 세입자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를 떠올렸다. '저희가 쓰레기가 많이 나와서 통이 꽉 차는 바람에 남은 쓰레기는 가라지 옆에 곱게 쌓아두고 가겠습니다. 버리고 가야 하는데 꽉꽉 눌러 담아도 공간이 안 나오네요.'
출국을 몇 달 앞두고 우리는 집을 구하는 동시에 전 세입자로부터 가구며 생활용품 일체를 인수받는 무빙 거래를 마쳐놓은 상황이었다. 사실 카톡으로 사연을 주고받을 때만 해도 그들의 사정을 십분 이해했었다. 어린 두 자녀를 챙겨가며 이국에서 자신들이 벌여놓은 생활을 마무리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 암, 그럴 수 있지.
그러나 문제는 차고 안 폐기물이 '부득이' 쌓아두었다 말하기엔 도를 넘는 수준이라는 데 있었다. 잡다한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낡은 가구, 망가진 스포츠 용품, 낚시도구들. 거기다 유모차와 카시트, 유아변기, 발판 등의 때 지난 육아용품까지. 미루어 짐작건대 한두 해 아닌 여럿의 집주인을 거치며 방치된 물건들이 이제 와 당당히 텃세를 부리고 있었다. 전 세입자 역시 그것들을 크게 개의치 않고 살다가 거기에 자신들의 못난 흔적을 더해 놓고는 겨우 큰 짐만 챙겨서는 간신히 몸만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집 내부는 더욱 가관이었다. 쓰지 않고 세워 둔 매트리스는 세 개나 되었다. 패브릭 소파며 의자, 침대 시트는 오염에 절어 당장 폐기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집안 곳곳의 수납장은 당장의 쓸모를 따져 물을 수 없는 잉여의 물건들로 그득했다. 우리가 인수받기로 한 건 생활에 요긴한 물품이지 처분을 불사해야 할 쓰레기가 아닌데.
그러나 우리는 전 세입자 부부에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따져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국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요모조모 묻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도 잘해주고 미국 초기 정착에 필요한 굵직한 정보들을 수시로 일러주던 그들에게 이제 와 화난 등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집 계약일을 전담해 온 리얼터에게 하소연한다 한들 책임은 돌고 돌아 그들 부부에게 돌아갈 테고. 어렵사리 얻어낸 1년 미국살이의 기회, 이 새 삶의 포문을 일종의 컴플레인으로 연다는 게 우리 부부에겐 무척 버거운 일로 느껴졌다.
험산준령의 끝, 새로이 마주한 거친 바위 앞에서 우리 부부는 망연했다. 어떤 수를 쓴다 해도 새로운 힘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폐기물 처리에 대한 희박한 가능이 마음을 절망적이게 했다. 과연 수 주 내로 이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엔 별다른 방도 없이 그것들을 머무는 기간 내내 끌어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긴 비행으로 녹초가 된 아들은 살갗이 스치는 일조차 찝찝한 거실 소파에 누워 제멋대로 몸을 구기고 있었다. 약한 감기 한번 없이 잘만 커오던 아이는 왜인지 출국을 앞두고는 크게 열병을 치렀었다. 미열이 오른 채 험난한 여정에 오른 딸아이도 몸상태가 안 좋기론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한국을 뜨기 직전까지 살던 집을 정리하느라 눈만 뜨면 버리고 치우고 팔고 나누는 고단한 일상을 이어오던 차였다.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휴식이었건만, 역설적이게도 그 일만은 가장 요원한 일로 보였다. 버젓이 차고지가 있고, 방 4개에 화장실 3개 달린 멀쩡한 미국집은 세상 초라한 공간이었다. 우리 네 식구 몸을 누일 한 평 공간이 없었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집을 잘못 계약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날의 마음이란 장맛비에 흠씬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어쨌거나 살 길을 강구하자 싶어 끙차 몸을 일으켰다. 거실 바닥에 걸음을 떼는 족족 기분 나쁜 물질이 발바닥에 끈적하게 들러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