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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집 쓰레기 이야기

강력한 터미네이터에 맞서는 법

by 서지현

나는 타운하우스에 산다. 주거 관리 비용의 일부가 집세에 포함되어 있는데, 쓰레기 처리 요금도 그중 하나다. 매주 정해진 요일 집 앞에 자기 몫의 쓰레기통을 내놓으면 수거차량이 와서 처리한다. 일명 'Trash Vallet'라 불리는 서비스로 종량제 쓰레기는 매주, 재활용 쓰레기는 격주로 배출한다.



쓰레기 수거일의 풍경은 제법 볼만하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거대한 몸집의 트럭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마을을 돌고, 차량 측면에 장착된 대형 후크가 집 앞마다 놓인 쓰레기통을 척척 들어올려 내용물을 비운다. 아이들은 '터미네이터'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트럭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원스럽고 일사분란(一絲不亂)한 동작으로 주어진 임무를 충성스레 완수해 내는 터미네이터의 모습을 거실 창에 붙어 서서 홀린 듯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력한 터미네이터라도 당해낼 수 없는 상대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 집에 쌓여 있는 쓰레기였다. '무빙'의 명목으로 우리 가족에게 떠넘겨진 거대 폐기물, 그 양은 실로 어마했다. 버릴 물건을 거실 한 구석에 쌓아 놓고 보니 금세 산 하나가 생겨났다. '산더미만 한'이란 표현이 단순한 은유가 아닌 실제가 되어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당연하게도 각 가구에 부여된 쓰레기통의 크기와 용량은 일정했다. 거실을 점령한 산더미를 1/N로 쪼개 매주 부지런히 배출한다 한들, 과연 수주 내로 끝을 볼 수 있을까?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거대 쓰레기산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이곳에서의 소중한 1년을 보낼 순 없는 일이었다. 해결책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집에서 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덤핑장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냈을 땐 너무 기쁜 나머지 쾌재를 불렀다. 시설의 정식 명칭은 'Convenience Center'으로 지역 주민이기만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여권과 주소지를 증빙할 집 계약서, 유틸리티 청구서를 꼼꼼히 챙겼다. 한껏 폐기물을 싣고 가서 다짜고짜 퇴짜를 맞아서는 안 될 테니까.



시설에 도착하자 키가 훤칠하게 큰 흑인 한 사람이 다가왔다. 트렁크 문을 열어 싣고 온 내용물을 보이자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구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Thank you, thank you."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우리는 무엇을 단단히 벼르고 온 사람처럼 내용물을 비장하게 끌어내렸다. 매트리스와 폐가구, 카드보드와 전자제품 등을 구별된 수거 구역으로 과감히 내던졌다. 장난감과 서적, 문구류는 도네이션함에 따로 담겼다. 성질을 딱히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은 묻지 않고 폐기시켰다.



흑인도우미는 자기 일처럼 우리를 도왔다. 그는 힘이 어찌나 센지 무게가 상당한 나무 의자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허공에서 빙글, 또 빙글, 그렇게 정확히 두 번 굴리더니 폐기함에 그대로 골인시켰다.



"Can we come again? We just moved in and there's still a lot."(다시 와도 될까요? 막 이사 왔는데, 쓰레기가 아직 많아서요.)

"Sure! You can come many times!"(물론이죠! 오고, 또 와도 됩니다!)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순간 체증이 풀리고 속이 확 뚫렸다. 이게 이렇게나 쉬울 일인가? 쓰레기에 하염없이 관대한 나라, 폐기물 신고의 의무도, 비용의 부담도 없는 이 땅의 덤핑 세계에 갈수록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덤핑장에 갈 채비부터 했다. 네 식구는 혼연일체가 되어 1층부터 3층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일꾼처럼 일했다. 폐기할 물건을 차에 싣고는 아침저녁으로 덤핑장을 오가는 일이 매일의 루틴이 되었다. 결코 의도한 바 아니지만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하기까지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식당도, 공원도, 마트도 아닌, 바로 덤핑장이었다.



나는 홀가분함과 함께 심한 죄책에 시달렸다. 쓰레기 배출 대가로 환경부담금을 지불하는 일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라고, 양심의 가책을 짊어지는 일만큼 큰 일은 없다고, 덤핑에 몰두하는 2주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덤핑장을 뒤로하던 날 나는 흑인 직원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Bye."를 외쳤다. '그동안 잘 받아주고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다시는 볼 일이 없었으면 해요!' 하는 말을 속으로 뇌면서.



쓰레기 때를 한 꺼풀 벗은 집이 본래 품은 멋을 겨우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집을 무엇으로 채워나가면 좋을까. 어마한 양의 쓰레기에 필적하지 못했던 터미네이터, 제로에 가까운 쓰레기 배출 앞에서도 그는 크게 무력화하지 않을까? 나는 종종 그런 재미난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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