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트에 처음 발을 들인 날 과일 코너에 함께 서 있던 외국인에게 내가 물은 말은 'What does lb mean?'이었다. 알이 굵고 실해 보이는 사과가 '$2.25/1lb'라는 가격 태그를 달고 있는데 부끄럽게도 'lb'가 뜻하는 바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초반에 장을 볼 땐 내가 사는 물건이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 채, 그 말인즉슨 그게 싼 건지 비싼 건지 제대로 가늠 못한 채 되는대로 장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1가 우리 돈의 천 삼백 얼마즈음에 해당한다는 어렴풋한 개념은 있었지만 찾던 물건을 바로 눈앞에서 만났을 땐 과연 그것이 합리적인 가격인지에 대해 한참을 따져봐야 했다.
그러고도 파운드에 대한 이해는 한동안 신통치가 못했다. 하루는 미국 택시 우버(Uber)를 타고 집에 오면서 운전자와 스몰톡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의 체격은 해비급이었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그가 탄 쪽으로 차가 슬쩍 기우는 느낌마저 들었다. 대화 중에 내편에서 '이곳에서는 어디를 갈 때 걸어갈 수가 없어 속상하다' 했더니 그가 호인처럼 털털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운전하는 이 직업을 좋아한다'고. '전혀 걷거나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까'라고. 그러고서 그가 이어 붙인 말은 이것이었다. '그래도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는 30파운드쯤 빼는 게 목표입니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30파운드가 얼마쯤 되더라. 가만있자. 장 볼 때 1파운드 무게가 1킬로에서 한참 빠졌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 30 파운드면...' 나는 적당한 말로 그의 다짐을 응원하고 차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와 냉큼 단위변환기를 열고 보니 1파운드는 약 0.5kg, 그러니까 30파운드면 무려 13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였다. 두 달 남짓한 기한 안에 10킬로도 넘는 살을 빼겠다고? 그의 목표란 얼마나 무리한 것이며 그런 그의 다짐은 호언장담을 넘어 허언에 불과한 게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뒷북치듯 털털 웃었다.
환절기가 시작하면서 NC 지역 육아 채팅방에서는 아이들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줄기차게 오갔다. 누군가는 '아이 체온이 102F가 넘어가서 104F를 찍으면 좀 위험한 상황'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한국에선 따로 체온계를 챙겨 오지 못했고 다행히 이 집에 미국식 체온계가 있는데, 아이들이 열이 나면 나는 열도 잴 줄 모르는 부모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화씨'와 '섭씨'의 개념을 스치듯 배운 적이 있지만 이론을 실제에 적용할 일은 좀체 없었던 게 문제였다.
타운하우스 수영장에서 만난 딸아이의 같은 반 친구는 성격이 명랑하고 말을 잘도 조잘댔다. '예전에 이 동네 UNC 웰니스 센터 수영장에 다녔는데요, 거기는 물이 깊어요. 7피트나 되거든요! 수영을 할 줄 몰라도 선생님이 우리를 막 거기에 빠트리는 놀이를 했어요.' 아이는 신이 나서 인근 수영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열어 1피트는 약 0.3미터에 달하는 길이요, 7 피트면 2.134 미터라는 걸 알아냈다. 세상에나, 2미터도 더 되는 깊은 물에 수영 못하는 아이들을 빠트려 수영을 가르치다니, 어떤 영법보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걸 우선으로 치는 저들의 의도를 나는 겨우 발견했다.
생소한 단위에 대한 이야기라면 끝이 없기에 이쯤에서 선을 그어야겠다. 각설하고, 그간 미국이 더없이 낯설고, 이곳 생활에 흠뻑 빠져들지 못했던 건낯선 풍경과 사람 탓이 아니요, 순전히 세상을 들여다보는 틀이자 툴(tool)인 단위가 몸과 머리에 익지 않았던탓이었음을인정해야 했다.
매일 접수하는 숱한 정보는 일단 머릿속 필터링을 거쳐야 했다. 이를테면 달러는 원화로, 오즈(OZ)와 파운드(LB)는 그램으로, 마일은 미터로, 길이, 무게, 속도 할 것 없이 모든 정보가 기존의 익숙한 단위를 투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이것은 번거롭고도 지루한 작업이었다. 나는 자주 뒷북을 쳤고, 한 박자 느린 정보처리 탓에 일상이 더디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언어를 닮아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언제나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길 꿈꾸지만, 현실은 그에 못 미쳐 영어로 입력되는 온갖 정보는 수순처럼 모국어의 필터를 거치곤 한다. 이도저도 안 되는 영어를 가지고서 변두리를 헤매며 가까스로 살아내는 일상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
이곳에 머문 지 3개월이 흐른 지금에서야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이방인인 내게 시간이 베푼 호의에 감사하는 건, 드물게나마 어떤 정보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하게 받아들여진다. 가령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70마일 이상으로 차를 몰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나의지청구가 시작되고, 마트에 따라나선 아이들이 원하는 과자를 집었다가도 6달러라는 가격을 확인하고는 그 길로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다는 것. 가장 반가운 변화라면 마트 장을 볼 때 제법 물건 가격을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나름의 살림 규모를 이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로 주어진 단위와 함께 나는 오늘도 내가 발 들인 세상의 물정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 모든 일이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라본다. 나의 언어도 그리 되면 좋겠다고, 조금 허황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