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짓기 전 나는 습관처럼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고 조금은 가뿐해진 몸으로 불 앞에 서고자 시작한 일이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초반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골목을 누볐다. 타운하우스의 호젓한 길을 걸으며 집들을 구경하는 일은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같은 양식의 집들이비슷한 규모로 지어졌다 하더라도 주인의 취향과 솜씨에 따라 완전히 다른 면모가 되는 걸 보면서 나는 동네 걷기의 재미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각양각색의 호박덩이가 계절 오브제가 되어 집집의 현관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일탈과 오락의 축제 핼러윈 시즌이야 말해 무엇하랴. 성탄을 몇 주 앞둔 요즈음, 집들은 앞다투어 트리를 세우고 은빛 금빛 조명을 밝히는 중이다. 경쟁하듯 단장을 마친 집들은 하나의 활기 아래 마침내 조화롭다.
스마트워치나 만보기, 그 흔한 걷기(달리기) 앱도 없이 산책길에 나선 지가 꽤 되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걸음을 떼게 만드는 동기로 이곳 자연풍광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을까. 앱 화면으로 수치상 걸음수를 확인하는 대신 눈으로 해의 동선을 좇고, 어느 길로 시작해 어느 건물로 빠져나가는 것이 호흡에 유리한지를 몸으로 알아나간다. 그리고 이제는 나만의 산책길이라 할만한 일정한 코스가 생기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예사롭지 않은 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맑은 물소리와도 같고, 거대한 수풀 속 나뭇잎의 살랑거림과도 같은 일렁임 뒤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수백, 아니 수천의 검은 새떼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저들만의 약속된 신호대로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하더니 비정형의 대형을 이루어 한 방향으로날아가 버렸다.
철새들의 에어쇼가 펼쳐진 하늘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나 홀로 비현실적인, 어쩌면 초현실적인 세상에 들어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마음이 부풀어 올라 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대로 있다간 숨이 턱 하니 멎을 것 같았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뛰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뛰느라 놓쳐버린 풍경이 아깝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뒤로 돌아 걸음을 뗐다. 흘려버린 풍광을 뒤늦게 눈으로 훑으며 보폭을 줄여나갔다.
그런데, 가만있자. 이 가빠진 숨이 진정되고 나면 한껏 명랑해진 마음도 슬그머니 사그라들지 모른다. 그 길로 나는 뜀을 뛰기 시작했다. 한 발로 두 번, 다른 발로 두 번. 꽃게처럼 옆으로도 폴짝거렸다. 엄마 손을 잡고 기분 좋게 나들이에 따라나선 어린아이의 마음이 꼭 이와 같을 거라 생각하면서.
해외 1년살이가 생활일지, 여행일지를 의문시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일상을 살다가, 휴일을 틈타 동네를 벗어나면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라 여겼다. 그러나 경계가 분명치 않은 삶도 있음을 알게 됐다. 여행 중 일상을 살아내다가 평범한 루틴 속에서 새로운 감흥을 얻는 삶도 있음을 배워나간다. 결국 나의 미국살이란 여행과 일상이 혼재된 삶이요,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아스라이 줄타기를 한다.
여행이 새로움과 의외의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작은 모험이라면 그것은 나의 생활에서 멀지 않다. 정해진 시간 굳게 닫힌 현관문을 빼꼼 열어 집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이 매일의 의무로 채워진 '일상'의 질기고 단단한 껍질을 까부수는 최소의 노력이요,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할 만한 새로고침 버튼이 어김없이 켜진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길바닥을 나뒹구는 단풍을 몇 개 주워 들었다. 빨갛게, 노랗게, 금빛이 돌도록(Golden brown) 잘 익은 잎가지들을 보면서 알록달록 비빔밥을 떠올렸다. 그래, 오늘은 너로 정했다. 주홍 당근 가늘게 채 썰고, 계란은 흰자 노른자 따로 지단으로 부쳐내고, 빨강 노랑 파프리카도 넉넉히곁들여 가을 비빔밥을 만들어야지.
오늘 식탁에 올릴 비빔밥은 이곳의 가을처럼, 매일 걷는 나의 산책길처럼 유독 아름다울 색채를 드러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