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이라는 세계
매일 아침 두 개의 도시락을 싼다.
나의 도시락 일상은 아이들의 미국 학교 입학을 앞두고 빤히 예고된 일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만만의 준비를 해왔다. 이 모양, 저 모양의 도시락통을 챙겨 왔고, 요리책도 몇 권 싸들고 왔다. 사실 조금 들레는 마음이기도 했다. 평소 도시락 싸는 일에 모종의 낭만을 품어왔었고,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그 일을 쉽게, 잘 해낼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등교하는 두 아이의 손에 하루도 빠짐없이 네모 모양 반듯한 가방 하나를 들려 보내는 일은 이상 아닌 현실이었다. 잠이 덜 깬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켜 새벽밥을 짓고, 스쿨버스를 놓칠세라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떤 식으로든 아이가 먹을만한 점심거리를 완성해야 하는 일. 아침 밥상을 차리는 동시에 '그날의 거를 수 없는 도전'을 치르다 보면 몸에서 이미 하루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갔다.
새벽밥 짓는 일에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도 메뉴 고민은 계속되었다. 도시락통의 일정한 규격에 들어맞고, 2-30분 내외의 점심시간 안에 먹을 수 있는 양이어야 하며, 먹고 나서도 배를 든든히 할 수 있는 음식.. 국물 없는 마른 찬이라도 너무 퍽퍽하지 않고, 식어도 제법 먹을 만한 음식. 이 모든 걸 떠나 아이가 반가워하며 즐길만한 메뉴를 매일 떠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낮이고 밤이고 도시락 쌀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요리책을 들췄다. SNS에 뜬 도시락 피드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전이라면 무심코 보아 넘겼을 사진 하나하나가 돌연 작품이 되어 눈에 들어왔다.
도시락은 과연 하나의 우주였다. 어느 누군가가 오직 한 사람을 그리며 창조해 낸 나름의 완벽한 우주. 그것을 가만 응시하노라면 먹는 이의 식성과 취향이 보였다. 평소 그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인지, 그의 한 끼 밥양은 어떤지, 그런 그가 도시락밥을 빠르게 해치워야 할 상황인지, 다행히 느긋하게 식사를 즐겨도 되는 상황에 처해 있는지 등이 말이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통 한두 개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메뉴들. 저마다 개성과 내용은 달라도 내 눈에는 하나같이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 작은 우주 너머에 있는 밥 짓는 이의 순애보를 보았다. 하나의 도시락을 완성하기까지 그가 감내했을 숱한 고민과 구상, 그리고 이른 아침 밥물을 잡기까지의 기꺼운 수고 등을 말이다.
나의 두 아이에게야말로 그와 같은 응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영어 구사력으로 보자면 아이들은 거의 날것의 상태로 미국에 왔다. 두 아이는 한국인 친구가 하나도 없는 학교에서 철저히 혼자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엄마가 싸준 도시락밥을 먹고 불끈 힘을 낼 수 있었으면 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나는 뒤로 물러나 도시락을 열심히 싸주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 건지 내가 두 아이를 도울 길은 그것밖에는 없었으므로.
기왕 '매일의 도전'을 치르는 김에 나는 그날의 맞춤 점심으로 아이에게 힘찬 응원과 격려를 보내기로 했다. 도시락 장인들의 솜씨를 흉내 내는 건 턱없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이의 필요와 마음상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길이 쉽게 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서서히 몸이 마음을, 마음이 몸을 따르고 있었다.
※도시락 이야기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