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없이, 우리의 밤이 온전할 수 있을까?

벼락같이 치킨을 끊었습니다

by 서지현

어울려 다니던 대학 선후배가 예닐 곱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군가 과외비를 타는 날은 치킨을 뜯는 날이었다. 우리 대학가에서 꽤나 유명했던 치킨집인 '삼*통닭', 그곳에 모여 우리는 청춘의 회포를 풀곤 했다.



대학 4학년 때였던가? 그중 치킨을 가장 야무지게 뜯던 한 남자와 사귀기 시작했다. 둘 다 산을 좋아했던 터라 주말이면 자주 산에 올랐다. 하산길에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나와서 너 하나, 나 하나 사이좋게 닭다리를 뜯던 흐뭇한 시간들, 그것은 우리가 누리던 별스런 낭만이었다.



열애 끝에 우리는 결혼했다. 치킨에 대한 사랑도 함께 이어졌다. 우리는 기념할 만한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치킨을 뜯었다. 새해가 밝아서, 이사를 해서, 손님을 치른 날이라서, 생일이라서, 가을이 시작됐으니까, 축구를 하는 날이라, 미스터 *롯을 봐야 하니까, 원고 마감을 한 날이니까, 그리고 불금이니까. 치킨을 주식으로 삼은 적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잠에 빠져든 야심한 시각, 치킨 한 마리를 두고서 부부는 오붓한 시간을 즐기곤 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치킨을 끊어야겠다.'

치킨과의 긴긴 동행 끝에 한 사람이 퍼뜩 정신을 차리게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몸이 보내오는 달갑지 않은 신호였다. 야식으로 치킨을 먹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몸이 삐걱댔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몸 전반이 무기력하고 찌뿌드드했다. 생체리듬이 깨어진 채로 힘겹게 하루를 버텨야만 했다. 치킨을 즐기는 짧은 시간의 즐거움을 위해 긴 하루를 볼모 잡히기엔 손해가 막급했다. 분명 손해나는 일이었다.



치킨은 가짜 음식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져 갔다. 어느 날은 치킨 향으로 가득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치킨의 흔적을 대번에 알아챈다. 순식간에 온 몸의 감각을 사로잡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치킨의 향이란! '아, 치킨 배달원이 방금 다녀갔구나.' 그러나 치킨을 다 먹고 나면 판도가 달라진다. "빨리 문 열어, 문 열어." 얼마 전까지 치명적인 유혹으로 다가왔던 바로 그 향이 집안에서 되도록 빨리 제거해야 할 고약하고 불쾌한 냄새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안다. 아, 이번에도 냄새에 홀리고 말았구나.



결심은 치킨 뒤처리를 하면서 굳어진다. 저녁 설거지를 마지막으로 기껏 구연산을 풀어 물때를 말끔히 벗겨낸 씽크볼이다. 겨우 물기 마른 씽크볼에 치킨무가 담겼던 단촛물과 남은 콜라를 쏟아붓고 젓가락과 마늘 종지(남편은 반드시 빻은 마늘을 곁들여 먹는다)를 씻어내야 하다니. 결국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잔반을 처리하고 또 한 번의 설거지를 하게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종량제 봉투는 다 차지도 않았건만 냄새나는 닭뼈를 집안에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봉투를 서둘러 묶고 (찬 겨울에는) 겨울 외투를 단단히 챙겨 입는다. 그게 밤 12시가 됐건, 새벽 1시가 됐건 아파트 쓰레기 처리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는 벌을 받는 기분이다. 단단히 대가를 치르는 느낌. 뭐랄까, 다 먹고 난 치킨 냄새만큼이나 썩 고약한 느낌. 결국 치킨은 잉여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허기를 채우 것과는 상관 없이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며 불필요한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무엇리라.



결정타는 입맛의 변화였다. 치킨 맛에 서서히 려가고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치킨 맛이란 게 딱히 새로울 게 없 예측 가능한 맛이 되어 버렸다. 주방에 선지 10여 년, 아이들 잘 좀 해먹이겠다고 이 재료, 저 재료 탐색하고, 여러 가지 조리법을 시도하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미각이 생긴 셈이다. 더이상 치킨은 매력적인 맛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치킨을 끊어야 할 이유가 제법 분명해진 셈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남편도 주기적으로 즐기는 치킨의 부작용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치킨을 끊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다. 어떤 명목으로든 치킨을 주문할 때면, '이번에 마지막이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기도.


그러던 차에 새해 1월 1일이 되었다. 그에게는 그 뒤로 이틀간의 휴무일이 더 주어졌다. 마침 미스*롯2 지난 방송을 돌려볼 참이기도 했다. 이 흐뭇한 시간에, 치킨 없이 긴긴 시간을 보낼 수야 있나. 치킨 주문에 대한 모든 명분이 명백한 밤이었다.



그날따라 치킨은 유독 맛있었다.(이실직고하건대 나도 세 조각 거들었다.) 튀김옷은 유례없이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러우며 육즙이 살살 흘러나왔다. 둘이 먹어도 평소 두어 조각 남기게 마련이었는데 그날은 닭 한 마리를 말끔하게 해치웠다. 평소대로 억지로 소화를 시키고 우리는 새벽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새해 벽두부터 사달이 났다. 아침까지 잘 먹고 난 남편이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몸이 예전과 달리 이상하다'라고 한 마디 남기고는 또다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뒤에 들리는 소리에 대해서는 '청천벽력'이라 해야 좋을지, '폭풍 같은 굉음'으로 표현해야 옳을지, 죄송한 마음으로 독자들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치킨을 먹기 전전날 상사와 생굴을 먹었다는 것인데, 그것으로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야식으로 치킨을 먹어 후폭풍을 맞은 것. 결국 그는 장염으로 장장 4일간 흰 죽만 먹는 신세가 되었다. 모든 걸 위로, 아래로 다 쏟아붓고 난 후 가까스로 죽 한 숟가락을 뜨면서 그가 말했다.

"이거...정말... 맛있다."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탓인지 게슴츠레해진, 그러나 진실된 그의 눈빛과 표정,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슬픈 일이 잇따랐다. 곧 아이들도 아빠의 전철을 밟아 꼭 같은 증세대로 앓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대로 집밥 잘 먹고 씩씩하게 뛰어놀던 첫째가 갑자기 구토를 시작했다. 밤새 신물이 나도록 토하던 아이가 진이 빠져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잠에서 깨어난 둘째가 와락 토를 했다. 멀쩡한 아이들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간 그는 대번에 우리 집에서 '전염병의 원흉'이요, '죽일 놈'이 되었다.



치킨을 끊기까지 치러야 할 대가 치고는 너무나 혹독했다. 치킨을 끊겠다는 그의 다짐이 강제로 실현된 날이었다.





치킨 없이도 우리의 밤이 온전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치킨과 함께라면 우리의 밤이 더 이상 성할 수 없다. 마음이 몸을 넘어설 수 없는 상태, 바로 그 시기가 온 것이다. 치킨 말고 뭐 다른 거 없을까? 보다 정신적인 것, 더 나아가 좀 더 영적인 그 무엇.



자기야, 우리 올해로 마흔이잖아. 마흔이면 불혹(不惑)이라 그랬어. 우리 이상 유혹에 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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