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솥이 한껏 참았던 숨을 터뜨린다. 냄비에 최대로 가해진 압력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김이 배출되기 시작한다. 비릿한 밥 냄새가 풍겨 나오고 그 사이로 고소한 콩 내음이 물큰 올라온다. 불현듯 허기가 돈다.
김이 다 빠진 압력솥이라도 한동안 뜸을 들인 후 뚜껑을 연다. 솥에 갇혀있던 훈김이 훅 끼쳐 오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문득 식구들을 향한 마음이 애틋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가 평생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지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주방 맡은 자의 의무감이 아닌 식솔들에 대한 측은함 때문이었을 거라고. 이제와서야 내가 그 마음을 이어받은 모양이다. 이 따수운 밥의 온기를 함께 나눌 이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가정마다 압력솥을 하나씩은 꿰차고 있다. 쿠* 압력밥솥이 신혼 소형가전의 대명사가 된 지는 오래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밥맛이 예전 같지가 않다고들 하신다. 여간한 쌀이 아니고서야 일반 밥솥으로는 맛있는 밥을 짓기가 힘들단다. 옛날과 같이 타작한 쌀을 자연 햇살에 펴 말리지 못하고 건조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렇다고. 단순히 열만 가해서는 맛 좋은 밥을 지을 수가 없다. 그런 탓에 압력밥솥이 유세하게 된 거고.
나의 경우엔 냄비 압력밥솥을 쓴다. 같은 압력솥이라도 타이머 기능이 장착돼 있어 알아서 취사를 책임지는 전기 압력밥솥과는 확연히 다르다. 재료의 내용과 분량에 따라 압력 수위와 취사 시간, 불의 세기 등을 직접 조절해야 한다. 냄비 압력밥솥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불 앞을 감히 뜨질 못했다. 혹여 압력이 지나칠까, 불의 세기가 너무 셀까, 밥이 타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실제로 밥도 여러 번 태워먹었다.) 멥쌀의 경우 어느 시점에서 불을 줄여야 하는지, 현미밥을 지을 땐 또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합을 맞추느라 오랜 공을 들였다.
차차 자신감이 생겼다. 더 이상 공식처럼 조리 시간과 압력의 세기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김이 뿜어내는 냄새만으로 밥이 되어가는 상태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으니. 냄비를 길들이면서 여러 가지 식재료로 다양한 재주를 부릴 수도 있게 되었다.
'칙 치이이이익'
밥솥에서 새 나오는 김은 집안 공기를 대번에 훈훈하게 달구어 놓는다. 사람 사는 냄새다. 바깥 놀이를 마치고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들어온 아이들조차도 솔솔 풍기는 밥내만으로 엄마가 무슨 밥을 짓는지 안다. "엄마, 오늘은 콩밥이지?" 혹은, "엄마, 오늘은 현미밥 지어요?"라고 물으며 그날의 밥을 대번에 알아챈다.
어느덧 압력밥솥은 나의 요술램프가 되었다. 퍼석한 멥쌀에도 근기를 더해주고 콩, 팥, 혹은 현미같이 여문 곡물조차도 입에 맞도록 부드럽게 지어주는 주방의 요술램프.
오늘따라 차지게 지어진 밥이 미덥다. 포근포근 잘 익은 콩에서는 밤 맛이 난다. 콩물에 물든 보랏빛 밥이 식욕을 돋운다. 잘 지어진 따스운 밥이 있으니 변변찮은 찬으로도 만족스러운 한 끼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밑이 노릇하게 지어진 밥이 부드럽고 꼬들하다
밑이 노릇한, 정확히 말하자면 눌기 직전의 밥을 가장 좋아한다. 딱딱하고 여문 누룽지가 아니라 주걱으로 쉽게 들릴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한 밥이다. 입안을 감고 돌며 씹히는 이 질감을 꼬들하다 해야 할지, 쫄깃하다 해야 할지. 아이들은 반찬에 손대는 것도 잊은 채 말 그대로 밥맛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아이들이 이 지경이니 우리 부부도 덩달아 밥맛이 좋아진다.
냄비 바닥에 노릇노릇 누룽지가 지어질 때도 있다. 누룽지는 박박 긁어서 꼭꼭 씹어야 제맛이다.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눌은밥으로 먹기도 한다. 입맛을 잃었거나 마땅한 찬이 없는 날 눌은밥에 깍두기나 멸치볶음, 혹은 뱅어포 반찬 하나만 척 얹어 먹으면 그만이다. 누룽지를 끓여내면서 얻은 구수한 숭늉은 보너스.
꼴사납거나 비위 거슬리는 대상을 두고서 '밥맛 없다'라고 뱉어내는 소리를 들을 때면 속으로 생각한다. 밥이 맛이 없기가 쉽지가 않은데 말이지, 하고 말이다. 내가 압력솥으로 지어낸 콩밥이나 밑이 약간 눌은 밥을 맛보고서나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