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핑 올린 밥

냄비밥이 특별하다

by 서지현
손수 지은 냄비밥이 특별하다



'오늘 밥이 무어냐'라고 묻는 것은 그날의 반찬을 묻는 말이나 진배없다. 주메뉴가 찌개인지 국인지, 그렇잖으면 뭐 하나 맛깔난 반찬이라도 는지 정도의 물음일 것이다. 밥에 대한 궁금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고슬고슬 흰밥인지, 백미에 찹쌀을 조금 섞어 지은 찰진밥인지, 식감이 살아있는 현미밥인지, 그것도 아니면 콩을 한 줌 얹어 지은 고소한 콩밥인지 하는 것은 다음 문제다.



밥상에서 '밥'이 차지하는 지위는 대략 어디쯤일까? 아무래도 주연은 못 될 성싶다. 다만 반찬과 국, 찌개의 맛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쯤 될까? 그렇다고 해서 비중 없는 조연은 아닌 것이다. 반찬이 없다면 맨밥이라도 퍼먹어야 겠지만 밥 없이 차려진 9첩 반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밥은 크게 주목받지는 못할지언정 상차림에서 절대 빠질 수 없고 빠져서도 안 되는, 제법 빛나는 조연 노릇은 하는 셈이다.






철마다 나는 콩을 올려 냄비밥을 짓는다.


그러나 어느 날은 밥을 특별 대우한다. 냄비밥을 짓는 날이다. 특별한 찬을 만들 요량이 서질 않고, 그렇다고 반찬의 가짓수를 늘릴 기운조차 없을 때는 그저 냄비에 정성 들여 밥을 짓는다.



냄비밥은 정성과 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먼저 밥물을 잡고 센 불에 냄비를 올린다. 뚜껑이 요란하게 떠는소리를 내며 밥이 부르르 끓으면 냄비 뚜껑을 활짝 열어 한 김 날려 보낸다. 불을 약불로 내리고 뚜껑을 덮은 후 밥이 서서히 익기를 기다린다. 불을 끈 후 몇 분간 뜸 들임의 여유까지도 엄연히 냄비밥 짓는 과정에 포함될 것. 이렇게 정성 들여 지은 밥에 한 두 가지 반찬을 곁들이면 간편식임에도 대충 때웠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냄비밥을 지을 땐 밥 위에 무얼 올릴까 고민한다. 밥에 콩을 올리고 싶을 땐 찬물에 콩을 미리 충분히 불려둔다. 봄에는 강남콩, 초여름엔 호랑이콩, 초가을엔 풋팥, 가을이 깊어지면 서리태콩과 돈부콩을 올린다. 무엇이 됐든 햇콩은 불리지 않고 그대로 넣어도 무방하다. 아주 가끔은 보랏빛 물로 밥을 안친다. 콩나물을 기르려고 지눈이 콩을 불린 날이다. 콩 불린 물을 밥물 삼고 콩 한 줌 얹으면 말그대로 색다른 밥이 지어지면서 기분마저 산뜻해진다.


냄비가지밥과 단호박밥


여름철엔 '하루 한 가지'를 요리한다. 가지는 쓰임도 조리법도 가지가지라지만 그 어떤 것이 냄비에 올려 쪄먹는 가지의 맛만 할까! 이렇게 쪄낸 가지는 적당히 쫄깃한 식감에 향과 맛이 살아있어 깊은 맛이 난다. 간장 한 스푼에 들기름 한 바퀴 둘러 그대로 가지밥으로 즐겨도 좋고, 가지만 결대로 찢어 나물로 무쳐먹어도 그만이다.



단호박을 올려 밥을 짓는 날도 있다. 단호박 토핑밥을 한술 뜨노라면 밥도 입도 달다. 밥 먹는 일이 이리도 행복한 일이었던가, 의아하다. 다른 식재료와 달리 가지나 단호박은 쉽게 익기 때문에 처음부터 조리하지 않고 냄비 뚜껑을 열고 한 김 날려 보낼 때 밥 위에 얹는다. 이것이 냄비밥의 매력인지 모른다. 필요한 순간에 언제고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점, 어쩌면 통돌이 세탁기가 드럼보다 우월한 점과 이리도 똑 닮았을까.



돌솥 곤드레나물밥과 콩나물밥
돌솥 시래기밥과 무밥



투박한 질그릇에 밥을 안칠 때면 밥 짓는 일이 더욱 실감 난다. 삶에 용기가 필요할 때, 밥심이 더욱 절실할 때는 돌솥밥을 짓는다. 어느 날엔 구뜰한 시래기밥을, 향긋한 나물이 그리울 땐 곤드레밥을, 소화력이 달리고 몸이 허할 땐 무밥을 짓는다. 마침 집에서 키우는 콩나물이 맞춤맞게 자라났을 땐 콩나물을 한 두 주먹 보기 좋게 올려 밥을 짓는다.



밥 위에 올릴 수 있는 토핑의 세계란 어디까지일까?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올린 각양 토핑은 밥의 보드라움과 구수한 향에 보기 좋게 어우러지면서 그 맛이 순해지고 담박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햇마늘이 나는 늦가을엔 마늘밥을 짓고, 생으로 먹기 버거운 더덕마저 밥 위에 올리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는 밥 짓는 부담에서 조금 놓여나도 되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궁싯거리고 있다. 밥 짓는 기술 대신 꾀만 늘어가니 큰일이다. 어찌 됐건, 내 주방살림의 여우주연상은 자타공인 별미라 칭하는 그 잘난 반찬과 국 찌개 대신 한 그릇 냄비밥, 그리고 돌솥밥에 돌리고 싶다. 모양은 질박하지만 밥 짓는 이의 진심이 있고, 부족함 없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맛을 생각할 때 화려하게 빛나는 상을 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기운 달리는 날엔 더덕밥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