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관계의 허기를 달래다
대학교 기숙사 식당밥의 기억
도시락 두 개를 든든하게 꿰차고 지내던 3년의 수험 시절은 쉬 지나갔다. 입시를 무사히 치러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새 학기를 며칠 앞둔 어느 날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모든 게 새로 시작하는 삶이었기에 옮겨올 짐은 크게 없었다. 이불 보따리와 옷 가지 몇 벌만이 서울길에 동행하신 부모님 손에 들려있었다.
나와 부모님은 기숙사 내부를 돌아보고 나서 내 이름의 명패가 달린 방을 찾아들어갔다. 선배 한 명과 신입생 두 명이 함께 사용하는 아늑한 방이었다. 내 차지의 침대에 이불을 깐 후 우리는 침대 한편에 걸터앉았다. 20대 초입에 의기양양하게 들어선 나는 나름의 성취감으로 살짝 들떠있었다. 아빠는 이제 막 시작된 나의 대학생활을 두고 반듯한 말씀 몇 마디를 훈화처럼 던지셨다. 그러나 엄마는 영 말이 없으셨다.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기숙사 언덕길을 내려가시며 엄마는 어렵사리 입을 여셨다. 애써 참아내셨던가, 말문을 트는 동시에 엄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 왜 울어. 잘 바래다주고선."
가까스로 눈물을 삼키시던 엄마는 감정을 추스르며 말씀하셨다.
"꼭 시집보내는 것 같단 말이야. 네가 이렇게 일찍 엄마 품을 떠날 줄 몰랐지. 딸은 서울로 대학 가면 시집가는 거랑 똑같다더라."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늘 곁에 끼고 있던 딸을 갑자기 독립시키려니 많이 서운하신가 보다, 그리 생각했다. 울적해하시는 엄마 탓에 잠시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우울한 마음은 되도록 빨리 털어내야 했다. 독립, 그렇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그렇게 예고도 준비도 없이 찾아왔다. 심지어 독립이란 게 무언지 전혀 아는 바 없는 까마득한 스무 살, 그게 집을 떠나온 애송이 여대생의 철없는 나이였다.
으레 대학의 신학기는 소란스럽고 분주한 법이다. 학부 선배를 알아가고 동기들을 사귀는 일이야말로 큰 일이라면 큰 일이었다. 선후배 관계가 제법 끈끈한 것으로 소문난 대학이었다. 선배들은 기꺼이 호주머니를 털어 후배들에게 밥을 샀다. 밥맛 좋다는 대학가 식당을 돌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기에 바빴다. 밥만큼 선배와 후배 사이를, 그리고 동기간을 빠르게 연결해주는 수단은 없었다.
그러나 성격이 내성적인 나에게는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일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때로는 학교 선배와 동기를 만나 밥을 먹는 일이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해서 점심 약속이 또 없는 날은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교내 식당이나 대학가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휴대폰에 저장되는 번호는 쌓여가는데 정작 속 깊은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데서 허탈함이 느껴졌다. 관계의 허기랄까, 느리더라도 보다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그런 인간관계가 그리웠다. 어색함 속에서 급하게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 먹는 밥 말고 살뜰히 나를 돌보기 위해 밥을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그런 편안한 밥상 또한 고팠다.
피할 곳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 식당만은 달랐다. 그곳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식당 조리실 쪽에서는 아주머니 서너 분이 큰 솥에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려가며 부지런히 밥을 짓는 게 보였다. 뷔페식의 식단은 호화로웠다. 반찬의 가짓수도 넉넉했고 아침 식사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름진 음식도 많았다. 차려진 음식의 정성과 수준에 비해 밥을 먹으러 온 기숙사 학생은 턱없이 적었다. 야심차게 밤을 보낸 후 아침잠과 사투를 벌이느라 아직 침대 위를 구르는 청년들이 많았으리라.
기숙사 식당밥은 등교 준비를 마치는 대로 혼자 가서 먹을 때가 많았다. 간혹 옆 방 친구를 만나 합석을 하기도 했지만 안면 정도만 있는 사이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서 혼자서 자리를 잡는 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대화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먹어도 된다는 게 편안했다. 잘 지어진 밥의 온기와 음식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어 좋았다. 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헛헛함과 허기가 가셨다. 가끔 고향집에 가고 싶고 엄마 밥이 그리울 때 기숙사 식당밥을 먹으면 마음이 달래졌다. 혼자 누리는 식사가 이렇게 여유롭고 편안할 수 있다니, 축 처진 마음을 살려놓을 수 있다니, 그저 놀라웠다.
기숙사에는 꼭 1년을 머물렀다. 그리고 기숙사를 뜨는 동시에 청춘의 진정한 독립이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글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부모님으로부터 등록금을 비롯, 일체의 생활비의 지원이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기숙사를 떠나면서 밥줄조차 끊겼다. 말하자면 기숙사에 머문 1년의 세월은 나의 독립생활을 앞둔 일종의 유예기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나 힘이 나는 밥이었건만, 기숙사 식당밥을 그때 좀 더 든든히 먹어둘 걸 그랬다고 한탄을 해본다. 늦잠 잔다고 몇 끼니 거른 일조차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