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밥상이었을까

배고픈 가정교사와 학부모가 차려준 밥상

by 서지현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엄마 밥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하루 세 끼 밥을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면서 더 이상 엄마가 지어준 밥을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나마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먹던 밥이 엄마 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었다. 그러나 1년 후 기숙사를 퇴소하게 되면서는 그마저도 누릴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세상의 모든 밥줄이 철저히 끊어고 만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캠퍼스의 소란 속에서 정신없이 새내기 시기를 보내고 눈을 크게 떠보니 커다란 현실이 떡하니 다가와 있었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등록금을 비롯, 부모로부터의 모든 지원이 일순간에 끊어져 버린 것이다. 화창한 봄날의 벼락같은 일이었다. 곧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부모의 여력과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잔잔하게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사실 등록금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학과 공부에 남보다 조금 더 공을 들여 성적장학금을 타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은 학기엔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오히려 매달 방값을 지불하고 책과 생필품을 사고, 그 무엇보다도 하루 세 끼를 해결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뼈에 와 닿도록 실감 나는 동시에 반드시 감당해야 할 현실이었다.



경제적 독립을 이뤄내야 했지만 공부하는 대학생 신분으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최소한도로 과외자리 두 개를 맡았다. 일에 무리한 에너지를 쏟지 않는 선에서 조금 부족한 듯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몸이 바쁜 나날이었다. 끼니보다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할 일들이 많게 여겨졌다. 학과 수업과 독서, 공예배 참석, 동아리 모임, 그리고 시간제 과외 아르바이트.


끼니를 가볍게 때우거나 건너뛰는 일이 왕왕 생겼다. 과외가 잡힌 날은 그런 일이 잦았다. 수업 시간에 맞춰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다 보면 밥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영양면에서 부족함 없는 식사를 제때 챙겨 먹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과외 전에 너무 허기가 질 때는 김밥 한 줄, 손바닥만 한 완두콩 시루떡 한 팩, 빵 하나에 우유 한 팩으로 빈 속을 달랬다.




과외 시간은 통상 두 시간이었다. 아이의 부모들은 수업 중간 즈음에 간단한 다과를 챙겨주시곤 했다. 한두 가지 과일과 차 정도. 간식은 훌륭한 강장제 노릇을 했다. 소소한 간식을 대하면 나른함이 물러가면서 기분전환이 되곤 했다.



유독 한 학생의 집이 생각난다. 학생의 어머니는 간식이라 하기에는 과한, 아예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차려주시는 일이 많았다.

"아, 선생님. 우리 애가 혼자서는 밥을 잘 안 먹어서요. 선생님이랑 같이 먹으면 밥을 좀 먹을까 하구요."

어머니는 되려 미안한 표정으로 수줍게 말씀하시며 밥상을 방으로 밀어 넣으셨다. 상 위에는 애호박과 두부, 양파, 파 등을 넣은 된장찌개가 냄비째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 곁에는 김치며 시금치, 멸치볶음 등의 밑반찬이 구성지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는 학생과 밥상을 마주했다.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한 보따리 이야기를 풀어내가며 밥반찬을 깨끗이 비워냈다. 구내식당이나 대학가 식당을 돌며 끼니를 해결하는 나로서는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밥인지, 부족함 없는 따뜻한 밥상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과외 때마다 한 상차림의 대접은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계란찜을 올린 밥상이, 또 어느 날은 비빔밥이, 가끔은 피자 한 판이... 어머니의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누굴 위한 밥상일까? 상을 물릴 때마다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살뜰하게 밥과 간식을 챙겨주실 뿐 과외 진도는 얼마나 나갔는지, 아이가 공부에 집중을 잘하고 있는지, 아이 성적은 좀 올랐는지 등의 여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셨다. 그분의 사랑과 신뢰가 나를 꼼짝못하게 붙들었다. 학생을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다르게 만들었다. 사랑을 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성정인가 싶었다.




제자와의 인연이 꾸준히 이어진 것은 아무래도 과외비로는 환산할 수 없는 사랑을 받은 덕이었을 성싶다. 그녀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다시 소식을 듣게 됐다. 그녀는 제법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최근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게 됐다고. 결혼 후 아이가 하나 있는데 엄마 품으로 돌아와 엄마 밥을 먹으니 이제야 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기를, 엄마가 선생님 잘 지내시는지 많이 궁금해 하세요.



네, 어머니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땐 무척 감사했습니다. OO에게 영어 한 줄 가르친답시고 집을 들락거린 제가 어머니께 한 수 배웠네요. 당시 밥줄이 끊긴 제게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만한 위로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기술도 지식도 훈계도 아닌 헤픈 사랑인 게 확실합니다. 저도 어머니처럼 허기진 사람의 배를 사랑으로 채워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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