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내가 되는 순간
지구에 내 공간만 남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기류가 밖에서 안으로가 아닌 내 공간에서 빙빙 도는 느낌을 받을 때. 눈앞에 있는 머그컵, 만년필, 벽에 붙여진 몇몇 사진과 포스터, 읽고 있는 책, 디퓨저의 향, 흘러나오는 음악이 과하지도 않은, 딱 적당하다고 느껴질 때. 그 안에 있는 내가 썩 맘에 들어 휴대폰조차 비행기 모드로 바꿔놓게 된다. 방해받지 싶지 않아서.
2020년 1월에 론칭한 콜린스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퍼스널 케어 브랜드이다. 대표 제품으로는 세니타이저를 시작으로 홈웨어, 인센스 등의 제품 라인업을 가지고 있으며, 모회사는 '콜린스'외 반려견 용품 브랜드 '베이컨 박스'를 운영하는 브랜드 커머스 스타트업 깃컴퍼니이다.
'콜린스'라는 브랜드 네임은 아폴로 11호의 사령선을 담당했던 조종사인 마이클 콜린스(1930-2021)의 이름에서 나왔다. 미국의 우주비행사이자, 군인, 항공우주공학자이며,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 착륙'이라는 말을 들으면 달에 최초로 첫 발을 내디뎠던 '닐 암스트롱'과 그가 달에 남긴 ‘발자국 사진’, ‘성조기가 꽂힌 사진’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달 착륙을 성공하고 귀환하는데 일조한 3번째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가 있었다. 그는 달 탐사가 진행되는 동안 안전한 지구 귀환을 위해 홀로 사령선에 남아 관제센터와 끊임없이 교신하고 착륙선, 사령선의 시스템을 점검하며 달 궤도를 돌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최초로 달을 밟아보지 못한 그를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인터뷰로 그 안타까움은 경외와 찬사로 바뀌었다. 마이클 콜린스는 사령선에서 혼자 임무를 수행하던 시간, 지구와의 모든 통신이 끊겼던 순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전혀 외롭지 않았어요. 심지어 따뜻한 커피도 한잔했어요. 작고 아름다운 나만의 공간을 소유한 멋진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황제이자 사령관이었어요. 우주선 창밖으로는 꽉 찬 지구가 한눈에 보였고, 그건 제 생애 최고의 광경이었습니다. 그걸로 충분했어요.
-콜린스 인스타그램, 마이클 콜린스 인터뷰 인용문-
콜린스는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가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그 순간을 외로움이 아닌 만족감과 해방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부분에 영감을 받았다. 그렇게 누구나 자신만의 '콜린스 모먼트'를 가지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브랜드 콘셉트로 표현하였다.
그 순간에는 다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한 '나만의 행복'이 숨어있습니다.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뽐내지 않아도 충만한 자신감.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죠.
-콜린스 인스타그램, 콜린스 모먼트 소개 내용 중-
이렇듯 강력한 콘셉트를 가지고 태어난 브랜드 네임은 빠른 시간에 인지도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들을 '콜린스 모먼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연상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브랜드는 그렇게 고객의 일상에 파고들게 된다. 고객의 일상에서 브랜드가 함께 기억되는 것이다.
콜린스 콘셉트의 시작은 강력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그만큼 ‘텔링’에 신경을 썼다. 콜린스는 '소비자'를 글자 그대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고, 개인적인 순간을 즐기며, 개성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한 명의 인간으로 대했다.
이 같은 태도는 콜린스의 공식 인스타그램 운영 방식에서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 첫 오픈 후 약 8개월 동안 핵심 콘셉트인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라는 주제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파는지,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한 홍보는 일절 없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개인적인 순간을 이야기하며, 느리지만 단단하게 공감대를 형성해온 것이다. 초기부터 팔로잉을 했던 필자 또한 제품이 론칭하기 전까지 개인이 운영하는 퍼스널 브랜딩 계정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특히,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콘텐츠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받아서 짧은 영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글로도 풀어내가며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소통해 왔다. 콜린스 오리지널 콘텐츠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물도감’, ‘콜린스 뮤직’등을 만들어 브랜드에 대한 연상을 풍부하게 만들었다(콜린스 제품들이 공식적 론칭된 이후로는 이런 부분이 약해져서 아쉽다).
이 행보는 그만큼 콜린스가 브랜드 콘셉트를 확실하게 전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시작이자 끝으로 여겼다는 맥락과 같이한다. 이렇게 차별화된 콘셉트 커뮤니케이션은 차후 콜린스가 선보이는 제품마다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동인이 되었다. 콜린스가 선보이는 제품 라인업(인센스, 세니타이저, 홈웨어 등) 또한 브랜드 콘셉트와 강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브랜드 인식과 상기 수준을 더 높일 수 있었다.
메시지 소통부터 제품 이용 경험까지 브랜드 콘셉트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인상적이다. 먼저 콜린스 홈페이지를 회원가입한 후 로그인 하면 페이지마다 나의 이름(00 씨)이 들어간 개인적 메시지가 나온다. 다정하면서 존중의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제품에서의 디테일은 인센스를 예시로 들 수 있다. 필자는 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센스에도 관심이 갔지만 주저하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인센스를 즐기려면 소품(트레이, 홀더)을 꼭 구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비용이 선뜻 결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는 점도. 당시 나는 소품들을 찾아 갖출 정도로 인센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고민하다 구매를 미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콜린스 인센스는 간편하면서 실용적이었다. 인센스를 사면 소품까지 같이 오기 때문이다. 홀더는 작은 집게형태로 되어있으며 보관함 넣을 정도로 작아 어디서든 손쉽게 인센스를 즐길 수 있었다. 트레이는 보관함의 뚜껑을 활용한다. 틴케이스 재질이라 홀더를 충분히 고정할 수 있는 트레이로 손색이 없으며, 사용하지 않은 인센스의 향을 오랫동안 가둘 수 있는 보관함의 역할로도 제격이다. 이러한 실용성과 간편함이 인센스 입문자들의 구매 장벽을 낮췄다. 뿐만 아니라 어떤 향의 인센스가 좋을지 고민일 때 여러 인센스 향이 담긴 시향 키트가 따로 있어 다양한 향을 즐겨보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세심하다.
제품 수령 4일 후 카카오톡 메시지로 온 콜린스 플레이리스트로 인센스와 함께 즐기는 시공간에 청각이 더해져 브랜드 체험은 더 풍부해진다.
이렇듯 콜린스는 제품을 탐색하는 순간부터 사용하기까지 고객이 행복하게 '콜린스 모먼트'를 느낄 수 있도록 브랜드 체험을 촘촘히 설계하였다. 브랜드의 진정성은 이러한 디테일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종종 콜린스가 제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디렉터스 노트'와 '디자이너 노트'를 보면 이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쳤고 노고가 있었는지를 담당자의 관점에서 진솔하게 보여준다.
브랜드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키우게 만든다. 생산과 소비와 같은 거래 관계를 넘어서, 브랜드의 시행착오를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깔리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을 브랜드로 표현하기 때문에 브랜드 스스로가 자신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줄수록 구매 이유는 더 강력해진다. 이는 누적될수록 다른 브랜드가 따라 하기 힘든 차별점이 된다.
콜린스를 체험해 보면서,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라는 책에서 언급한 7C가 잘 반영된 브랜드라 생각한다. 7C는 브랜드 콘셉트가 갖춰야 하는 7가지 요소로, 고객지향성(Customer-Orientation), 응축성(Condensation), 창의성(Creativity), 지속성(Cotinuity), 조화성(Combination), 일관성(Consistency), 보완성(Complimentarity)을 말한다.
앞서 말한 콜린스의 브랜드 스토리를 7C의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콜린스는 제품의 속성이나 특징처럼 기능적 필요(니즈)를 넘어서 고객관점에서 왜 사야 하는지를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라는 비기능적 욕구(원츠)에 초점을 맞췄다. 물건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보다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수요와 가격에 한계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욕구 중심으로 콘셉트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을 '콜린스 모먼트'라는 단어로 입혀 브랜드의 콘셉트를 응축시켰다. 제품의 특징이나 효익이 하나로 응축된 브랜드 콘셉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정서적인 메타포가 될 수 있다.
콜린스는 브랜드 콘셉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타 브랜드 커머스와는 차별화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쳤다. 인스타그램 운영 초기 8개월간을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을 주제 삼아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쌍방향 소통을 하였다. 그 기간 동안 제품의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제품 원가는 잘 모르나, 라인업을 볼 때 수익성이 높은 제품과 전시효과가 있는 제품을 구분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디렉터스 노트'와 '디자이너 노트'를 보면 콜린스의 브랜드 콘셉트가 내부 직원들에게도 잘 공유되어 서로 같은 마음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콜린스의 제품들만 보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제품군이다. 그럼에도 콜린스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제품이 아닌 브랜드가 함의하고 있는 가치(=소비자의 욕구)에 포지셔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품 우수성을 알리는데 집중하는 것은 쉽게 모방당한다.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더 나은 제품이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는 추상적인 포지셔닝이지만 성공하면 가장 차별화되고 강력하다. 제품의 선호는 쉽게 바뀌지만 사람들이 중요시 생각하는 가치와 욕구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욕구를 자극하는 브랜드는 그것을 소비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그 브랜드의 가치를 알린다. 그리고 기존 소비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소비자의 구매동인이 된다. 이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 경쟁사가 따라 하기 힘든 무형자산이 되며, 그 중심에는 강력한 브랜드 콘셉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