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녀를 괴롭히는가
나는 보통 11월부터 새해맞이를 위한 준비를 한다.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엔 조금 늦은 12월부터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2023년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쓱 적어두었다.
12월이 정말 고단했는데 고통받을 미래를 과거의 내가 짐작이라도 한 듯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부터 연차를 몰아 써두었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의 달콤한 일정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들을 성실하게 해치우니 2024년이 왔다.
결연한 의지를 불태운 나는 아주 단 맛의 휴식을 뒤로하고 어제 새해 첫 출근을 마쳤다.
오랜만에 만난 제이는 (제이와 나는 3일 정도 떨어져 있으면 얼굴이 가물가물해질 정도다) 나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그녀의 진정한 웃음은 어제 아침에 봤던 그 표정이 다였다.
제이는 지금 마음이 지옥이라고 했다.
신선한 마음으로 새해 첫 출근을 했는데 ‘지옥’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 줄이야.
23년 12월 초, 나는 퇴근 후 회식장소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1.xx 수량의 비트코인을 매도하라는 부추김에 넘어간 제이는 순순히 수익실현을 했다.
아 그건 내 실수였다.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오를 거야, 분명 오를 거야 “
했던 그녀의 혼잣말을 누가 듣기라도 했는지
2년 가까이 파란불이었던 코인이 어느덧 빨갛게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의 얼굴도 좀 상기되어 있었던 것 같다.
2년 남짓 소지했던 비트코인은 매도하는 순간 제이의 계좌에 +90만 원이라는 숫자로 꽂혔다.
나는 드디어 제이가 돈을 벌게 되어 그녀보다 더 기뻤다.
문제는 매도한 그 이후였다.
5에 팔았던 코인은 다음날 앞자리가 6으로 바뀌었다.
며칠만 참았더라면 그녀는 몇백만 원의 수익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소탐대실 후 제이는 크게 낙담하였다.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용띠인 제이는 청룡의 해가 왔음에도 후회 속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일상생활이 어렵다고까지 말했다.
그렇게 1월 3일인 오늘이 되었고,
계속 마음속이 지옥이라고 말하던 제이는 몇 차례 비트코인 매수타이밍을 엿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만류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제이는 조바심이 났는지 아직도 앞자리가 6인 비트코인을 나와 상의 없이 구매했다.
퇴근 후 파랗게 물들던 비트코인은 앞자리가 5도 모자라 4까지 추락할 기세로 내려앉고 있었다.
이번엔 그녀의 실수였다. 인정해라.
사람 마음은 참으로 상대적이다.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마음은 하루에도 여러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울게 되던 웃게 되던 결국 직접 선택하고 해 봐야 끝이 난다.
매우 신중한 편인 그녀는 오늘 놀랄 정도로 충동적이었다.
코인이 그녀를 괴롭혔던 것일까? 그것이 그녀의 일상을 침범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이는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
소신있던 그녀는 어디가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니 그 필요성이 더욱 느껴진다.
나는 올해만큼은 그녀가 계획적인 일상을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2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