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편견 극복하기
22년 11월 1일,
성별 구분짓기
부모가 되고 나는, 성별 이분법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작명 단계에서 남녀 이름의 자유도가 달랐던 것은 사소한 예다. 2022년, '임의적' 성별 구분짓기는 내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주와 같은 진공상태에 있지 않기에 그 영향은 꽤 유해하게 느껴졌다. 구분짓기는 기성세대가 편의란 명목 하에 유지, 강화해왔다. 부모가 된 우리는 적어도 성별 편견을 강화하는 언행은 피하자고 다짐했다. 이는 일단, 여러모로 세심히 살피자는 약속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유아동복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 패션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남녀 아동복을 따로 만들어 팔았다. 즉 우리가 성별을 특정 색, 디자인과 연관 짓는 것은 명백한 사회화의 산물이다. 배 속 아이가 태어나면서 성별에 따라 일률적 선호를 갖는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성별 차이가 유전에서 오는 것이란 인식이 팽배한 것은 성별 편견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다. 100%는 아닐 테지만, 후천적 요인을 선천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성별 분화에 변화가 전혀 없진 않다. 최근 남녀로만 나뉘던 성별 분화에는 중성이 더해졌다. '젠더 뉴트럴'은 이분법보다 긍정적이란 점에서 고무적 변화다. 그러나 아내의 임신기간, 아이 성별을 알게 될 때를 전후로 우리는 성별에 얽힌 근거 없는 통념을 접했다. 아이가 남자면, 또는 여자면 이렇고 저렇다는 류의 말이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단순화라, '우리 둘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나'란 의문이 들었다. 임신기간이 중후반기로 접어들수록 구분짓기 압박은 수위가 높아졌다.
둥둥이가 여아란 사실을 밝힌 후에는 "첫째가 딸이면 OO 할 것"이란 말을 빈번하게 들었다. 딸이니까 아들보다 키우기 수월할 거란 이상한 말은 내 주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갔다. 둘째를 낳을 계획도 없고, 첫째가 딸이란 걸 알고 특정 이미지를 떠올린 적도 없는 우리는 적잖게 당황했다. 이는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안타깝게도 성별 구분짓기는 가족, 주변 지인들의 선의를 퇴색시켰다. 물론 그들의 선의에 유감이란 뜻은 아니다.
첫째로 눈에 띈 점은 선물로 받은 아이용품의 색이다. 선물을 준 이들은 여아에 맞는 색을 찾아 고른 듯했다. 약속이나 한 듯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등이 다수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울 때, 성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그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되도록 아이를 '임의적' 성별 구분짓기에 노출시키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렌즈로 임신, 출산, 육아를 들여다보니 고전적 구분짓기는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있었다. 옷, 아이용품 등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였다.
또 다른 예는 조리원 사진 촬영에서 나왔다. 조리원은 아이 사진을 무료로 찍어준다고 했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은 분홍색 배경 공주 분장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고르지도 않았는데, 촬영팀이 사진을 찍기 전에 그렇게 세팅을 했다고 전했다. 출장 작가는 대개 남아는 파란색, 여아는 분홍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도 했단다. 아무도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내가 2022년에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결국, 이 날 촬영한 사진은 원본을 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아내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만 증거로 남았다.
앞으로 우리 부부는 성별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에 맞설 것이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좇는 삶이 힘들다고 그 길을 포기해야 할까? 이제 우리는 겨우 시작점에 있고, 높은 파도를 얼마나 넘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계속 나아가야 한다. 물론 어쩔 수 없이 타협점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때는 또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는 성별 이분법이 사라지길 바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야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수록 그 변화는 빠를 것이다! "Wanna join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