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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스페인 자연의 위대한 유산

희학적 아름다움 연출하는 기암괴석들에 감탄하다 스페인산과 사랑에 빠져

by 이철현

지난 사흘간 바르셀로나 도심을 돌아다니다보니 스페인의 자연이 궁금했다. 근교로 벗어나 해발 1236m 고봉들이 잇대어 붙은 돌산, 몬세라트를 갔다. 에스파니아 광장에서 국영철도 렌페 R5를 타고 한시간가량 가면 몬세라트 산이 나온다. 산 중턱에 바실리카(성당)과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어 신앙심 깊은 신자라면 자주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안토니 가우디도 이 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들을 창안했다고 한다.


에스파니아광장 옆에 붙어있는 렌페 역에서 기차와 케이블카(기차역과 몬세라트 수도원 오가는 왕복 케이블카) 통합 티켓을 구입했다. 출발시간보다 45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마침 도착한 기차를 타고 한숨 졸았다. 졸다 깨다 갑자기 시끄러워져 정신이 들었다. 노르웨이 여자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차 떼거리로 몬세라트에 왔다. 얼핏 대학생들처럼 보였다. 워낙 발육상태가 좋다보니.

20210904_151103.jpg 상막달리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기암괴석들

본의 아니게 이 친구들과 줄곧 동행으로 움직였다. 다소 시끄러운게 흠이지만 열정적으로 앞사거니 뒷서거니 발랄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끔 사진찍기 좋은 곳이 나오면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그러다 노르웨이에서 바르셀로나로 수학여행 왔다는 것도 알았다. 앞에서 인솔하는 선생님이 잘생겼다. 선생님 통제 아래 이마에 땀방울 맺혀가며 질서있게 올라가는 모습이 참 이뼜다. 그러다 산 중턱을 지나 정상에 가까워지자 넋을 잃고 산에 빠졌다. 발 아래에 펼쳐진 기암괴석들의 향연에 한참 멍때리고 앉아 있었다.


몬세라트 산의 기암괴석들은 웅장하지만 희학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다. 산 깊은 곳에서 선 표면에 구멍들을 낸 뒤 쭉 짜셔 밀어올린 것처럼 올록볼룩하게 솟아와 여러가지 동물과 식물 모양을 만드는 등 희극적 요소를 갖췄다. 어떤 건 경쟁적으로 자라난 버섯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저 멀리 정상 부근에는 원숭이, 앞면에 뭉개진 스핑크스, 코주부 등 온갖 모습들이 바위 사이 사이 낀 수풀을 경계로 오손도손 이어 올랐다. 거칠 것없이 멀리 뻗은 시원함이 경쾌했고 올망종말 모여서 솟은 희학적 모습에 유쾌했다.

20210904_160925.jpg 수도원 앞으로 형성된 낭떠러지

정상을 내려와 수도원 가장 깊숙이 모셔진 검은 마리아상을 보러 갔다. 바실리카 제단 벽 정중앙에 자리해 신자들을 내려다보는 검은 마리아상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검은 마리아 상의 오른 손에 쥐어진 구슬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 맹목적 신앙심과 겹쳐지면서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 검은 마리아 상 앞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바실리카 내부는 현란했다. 신앙심의 깊이를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온갖 문양과 성물들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성스라운 분위기보다 과하게 요란스럽다는 느낌이다. 마침 이곳에서 결혼 미사가 행해지고 있었다. 다소 요란스럽게 차려 입은 신랑 신부 하객들이 몰려들어 앞좌석을 차지했다. 어쩌다보니 신부가 내 옆을 지나 입장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신부가 상당한 미인이었다. 신랑 얼굴이 더없이 화사해보였다.

20210904_160607.jpg 산 중턱에 자리한 철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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