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특유의 향이 몸에 밸 때까지 그냥 살고 싶은 곳
산티아고 마지막날 밤은 최악이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양쪽에서 코를 골았다. 한쪽이 잠잠해지면 다른 쪽에서 다시 소리를 높였다. 침낭과 모포를 들고 1층 거실로 나와 그곳에 모포를 깔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 1시가 넘어가자 밤늦게 들어오는 순례객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어떤 인간들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침낭과 모포를 들고 다시 침대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양쪽에서 서라운드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비 오는 소리를 틀고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빗속을 뚫고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림통이 크다보니 코고는 데시벨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다. 거의 비몽사몽 간을 오가며 선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갔다. 순례객을 위한 새벽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보통 미사보다 압축적으로 진행해 미사는 30분만에 끝났다. 신부님 강론은 없었고 헌금은 복사가 헌금 보자기를 들고 거두고 최후의 만찬식과 영성체 모시기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오징어게임을 보다가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왔다. 12시 정각에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렸다. 버스 안에서 푹 자고 일어났더니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에 도착했다. 로마 시절 포르투 데 칼레라 불릴 정도로 포르투는 포르투갈의 형성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12세기 설립된 포르투 대성당을 비롯해 도시 곳곳에 유서 깊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골목은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채 곱게 낡아 있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뚫고 지나 히베이라 광장으로 나왔다. 도우루 강변 양쪽에 형성된 포르투와 비니 지 가이아 지구는 동루이스1세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히베이라 광장에 도착할 때 이미 해가 마지막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시 뒤 석양으로 바뀔 빛이었다. 히베이라 광장을 지나 도우루 강변에 연결된 동루이스1세 다리 밑층을 걸어 넘었다. 빌라 노바드 지 가이아 지구로 넘어가 언덕을 걸어올랐다.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경전철 선로를 넘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언덕 위에서 맞은편 포르투 지구를 바라 볼 수 있는 언덕에 일렉트릭 기타로 버스킹하는 이가 있고 그 앞에 청중들이 언덕을 메웠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도우루 강과 맞은편 포르투 지구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얼핏 피렌체를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곳에서 잠시 멍때리다가 경사가 아주 가파른 경사길을 더 오르니 세라르필라두 수도원 앞 언덕까지 올랐다. 그곳에서는 동루이스1세 다리, 포르투 지구, 도우루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해가 마지막 빛을 발산하고 있어 사위가 아직 밝았다. 한참 멈때리다 동루이스 다리 윗층을 걸어넘었다. 다리 한가운데서 석양을 맞고 싶었다. 해가 질 때까지 다리 가운데 서 있었다. 붉은 기운이 가라앉고 발 아래 건물에서 불이 켜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별이 하늘이 아니라 동루이스1세 다리 밑에서 켜지는가 싶더니 이내 빛으로 가득 채웠다.
히베이라 광장으로 걸어내려오니 길거리에서 색소폰 음악이 흘렀다. 색소폰 연주자가 부드러운 음률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더 내려가니 팝송을 부르는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2인1조 혼성 아크로바틱을 선보이는 커플도 있었다. 팝송 부르는 가수나 아크로바틱 커플 주변 식당은 손님이 많아 시끄러웠다.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 색소폰 연주자 앞 레스토랑에 들어가 포르투 와인을 주문했다. 도우루 강변에서 동루이스1세 다리를 배경으로 섹소폰 연주를 들으며 포르투 와인을 마시다니 참 호강하고 있다. 파스타는 너무 짜서 입에 맞지 않았지만 포르투 와인은 달콤하고 강렬했다. 단맛이 강하고 알콜 도수가 높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나왔으니 5시간 돌아다닌 셈이다. 그동안 히베이라 광장, 도우루 강변 따라 동루이스1세 다리 건너고 맞은편 빌라 지 가이아 지구로 들어가 셀라르필라두 언덕까지 올라갔으니 짧은 시간 안에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은 폴란드인 도미니카도 포르투에 왔다. 아침에 포르투행 버스를 타다가 만났다. 그녀 제안으로 내일 투어에 참석하려 했으나 예약이 꽉 차는 바람에 내일도 내 멋대로 자유여행할 듯하다. 상벤투역부터 클레리고스 교회까지 돌아다닐 예정이다. 이곳 특산물은 타르트도 먹어야겠지. 이곳에서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포르투는 아기자기하게 이쁜 도시다. 피렌체만큼 화려하지 않고 파리만큼 찬란하지 않으며 로마만큼 웅대하지 않고 바르셀로나만큼 향이 지나치지 않고 이스탄불만큼 강렬하지 않지만 보고 있으면 특유의 매력이 서서히 배어나오는 곳이다. 그 잔잔하게 우러나오는 향이 골목마다 가득해 그 이쁨에 질리지 않고 서서히 중독되는 곳 같다. 이곳에서 한달 살고 싶은 한국인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포르투는 동네 특유의 향이 몸에 밸 때까지 그곳 안에서 그냥 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