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월12일] 포르투 와인 상점에서 진상 손님 되다

포르투, 이쁘지만 나랑 궁합 맞지 않는 곳

by 이철현

오후 3시 지나 빌라 보다 지 가이아 지역으로 건너갔다. 포르투 와인 주조장과 전문점이 도오루 강변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싸더라도 포르투 와인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오전 시내 투어 전문 가이드가 추천한 와이너리 중에서 가장 그럴싸한 곳으로 들어갔다. 17세기부터 포르투 와인을 주조한 터라 역사가 오래되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1층 프론트 데스크에 있는 매니저에게 포르투 와인을 종류별로 주문하자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쳐놓은 금줄을 젖히고 2층으로 안내했다. 2층 창가 자리는 손님 2명이 각자 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창가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으로 북유럽 인으로 보이는 커플 2명은 주문한 와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여직원 하나가 유리잔에 담은 와인 서너 종류를 갖고와 커플 앞에 내려 놓고 와인의 맛, 향, 특성 등을 유창한 영어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잠시 뒤 내 테이블 위에 내가 주문한 와인들을 내려 놓고는 그냥 뒤돌아 가벼렸다. 5분 뒤 미국인 여성 2명이 내 앞 테이블에 앉았다. 역시 1층에서 고른 와인을 가져와 내려놓은 뒤 1~2분 가량 와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먼저 온 손님들에게도 맛과 향이 어떠냐, 다른 와인의 맛을 보겠느냐 등 물으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나를 빤히 보고는 개무시하고 지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2층에 총 6팀 8명이 앉아있었는데 나만 설명을 못받은 거다.

KakaoTalk_Photo_2021-10-12-20-10-08 001.jpeg 포르투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볼 수있는 글레리구스 종탑이 멀리 보인다.

매니저를 불렀다. 나이 지긋한 매니저는 친절한 미소를 짓고 와인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매우 불쾌하다. 내가 포르투 와인에 대해 잘 알게 생겼냐, 아니면 영어를 못알아듣게 생겼냐. 저 종업원이 다른 손님들에게는 주문한 와인을 자세히 설명하고 추가 주문도 받고 돌아다니면서 내게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아는 척하지 않는다. 설사 내가 포르투 와인에 대해 잘 알게 생겼거나 영어를 못알아듣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건 손님의 몫이고 손님이 주문한 와인에 대해 설명을 다하는 건 종업원의 책임이다. 포르투 와인을 처음 맛본다. 포르투 와인을 처움 경험하는 이에게 당신 와인에 대해 불쾌한 기억을 남겼다는 건 당신 브랜드와 전통에 대한 모욕이라는 걸 잊지마라. 계산서 가져와라. 가겠다”라며 2분가량 개거품을 물며 불만을 토로했다.

KakaoTalk_Photo_2021-10-12-20-10-15 003.jpeg 글레리구스 종탑에서 내려다본 포르투 전경은 아름답다.

매니저는 어쩔줄 몰라했고 옆에선 종업원은 창백해져 갔다. 급기야 매니저는 “직원 실수를 인정한다. 와인 값을 받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계산하는 건 손님의 책임이다. 당신들 서비스의 실패를 돈을 받지 않는 것으로 회피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매니저는 “와인 값에는 서비스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서비스를 실패했는데 돈을 받는게 적합하지 않다”라고 항변했다. 현금이 있으면 값을 치르고 나가겠지만 모자며 뱃지며 기념품을 사는 바람에 카드로 계산해야 했다. 그런데 받지 않겠다고 난감했다. 잠시 씨름하다 반만 내는 걸로 합의하고 나왔다.

KakaoTalk_Photo_2021-10-12-20-10-21 005.jpeg 상벤투역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아줄레드 양식 타일

오전 시내 투어에 참석했다. 도미니카 추천으로 시내 숨겨진 명소를 따라 다니는 투어 프로그램에 자리가 나는 바람에 극적으로 합류했다. 독일인 부부, 이탈리아 커플, 네덜란드, 폴란드 사람과 함께 움직였다. 걷다가 페드로에게 물었다. “포르투는 물가가 싸서 한국인이 한달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있다. 어제 히베리아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와 와인을 주문했는데 아주 비쌌다. 그새 물가가 오른 거냐?” 페드로는 웃으면서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관광객에게는 비싸게 받지 않냐. 당신은 누가 봐도 관광객처럼 생겼다”라고 하더라. 또 어이가 없었다. 앞으로 포르투에 오는 한국인이라면 현지인처럼 생겼거나 포트투갈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않는다면 도오루 강변 식당은 가면 안되나보다.

KakaoTalk_Photo_2021-10-12-20-10-24 006.jpeg 기차역이 관광명소인 상벤투역

페드로는 우리 일행을 뒷골목 구석구석 안내하며 빅토리아부터 식민지 브라질풍 가옥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설명하며 오르락내리락했다. 급기야 아르데코까지 나오는 순간 “아 잘못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양식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괜찮은 관광 프로그램이지만 나같은 무내한들은 흥미를 갖기 힘들었다. 게다가 페드로는 아주 강한 포르투갈 억양의 영어를 구사한 터라 반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를 더 잘했더라도 내 흥미가 더 커지지는 않을 듯했다.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대열에서 이탈했다. 시간이 아까웠다. 역시 가이드 투어는 내가 맞지 않는다. 대열을 나와 상벤투역으로 갔다. 아줄레드 타일이 멋진 곳이라는 소리도 들은데다 리스본행 기차 시간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파란색 타일이 기차역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특이했지만 그게 그리 대단한 작품인지 모르겠다. 우리 동네 목욕탕 벽면에 장식된 타일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하면 정말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타일 보는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는 것 어쩌겠는가. 아무튼 포르투갈인들은 습기가 집으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세라믹 타일로 집 바깥벽을 꾸몄다고 한다.

KakaoTalk_Photo_2021-10-12-20-10-27 007.jpeg 가이차 지구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르투와 도오루강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갔더니 입구에서 50센트를 내고 들어가라며 회전 가림막이 가로 막았다. 또 어이상실,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괘씸해서 그냥 나왔다. 상벤투역에서 글레리구소 종탑으로 가는 길에 스타벅스가 있길래 얼른 들어가 화장실로 바로 향했다.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화장실이 잠겼있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버튼이 붙어 있었다. 커피를 구입한 영수증에 있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뭐지? 또 어이상실.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이 영감을 받았다는 렐루서점으로 갔더니 줄이 장사진이었다. 이 서점에 들어가려면 5유로를 내야 한다. 서점 가는데 입장료를 받는다. 헐~ 그냥 지나쳤다.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배고파서 닭가슴 샐러드와 맥주를 시켰다. 그런 뒤에야 나는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KakaoTalk_Photo_2021-10-12-20-10-12 002.jpeg 포르투 시청 앞에서 관광객 모드 촬영 찰칵

글레리구스 종탑에서 내려다본 포르투는 아름다웠다. 빨간 지붕이 밀집대형으로 붙어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퍼져나갔다. 그 사이 골목들이 엉켜 있고 일부 골목 벽에는 멋대로 자란 잡초가 파릇했다. 도오루 강 너머 보이는 비야 보다 지 가이아 지구는 훨씬 가까이 다가왔다. 참 멋진 곳이지만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은 듯하다. 여러 차례 어이상실을 경험한 터라 나는 가이아 지구 언덕 위에 걸터 앉아 리스본 숙소를 예약했다. 당초 며칠 더 있으려 했지만 그냥 떠나고 싶었다. 나중에 다시 오고 싶었다. 그런데 더 있다가는 다시 오겠다는 생각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가끔 우연이든 과실이든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될 때는 그 시간과 장소를 잠시 떠나 있는게 좋을 경우가 종종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월11일] 포르투갈 제2도시 ‘포르투'에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