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주 강변 코메르시우 광장 모래에 누워 한가로움을 즐기다
느즈막하게 숙소에서 나왔다. 오전 10시 넘어 체크아웃하고 익숙해진 골목 길을 걸어 내려가 상벤투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12시30분 리스본행 열차의 탑승권을 구입했다. 1시간30분가량 시간이 남았다. 도오루 강변으로 내려갔다. 도오루 강어귀는 포르투갈이 개국한 곳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가문 출신 기사 엔리케가 도오루 강 남쪽 지방을 점령하고 있던 무어인을 1250년 완전히 축출하자 왕은 국토 일부와 딸을 주어 공국을 건설하게 했다. 그 지명이 도우로 강 어귀의 포트투칼레였다. 포르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산책이었다. 가보지 않던 후미진 골목이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정처없이 걸었다. 그러다 발이 닿은 곳은 루이스1세 다리 포르투 쪽 끝이었다. 그곳에서 가파른 골목길을 올랐다. 계단이 꼭대기까지 이어졌다. 가뿐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랐다. 그 골목 양쪽에 자리한 집들과 담벼락에 지저분하게 그려진 낙서를 따라 오르다보니 눈 앞에 포르투 대성당이 나왔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 포르투와 비야 보다 지 가이아 지역을 내려다보며 멍때리다가 열차 시간에 맞춰 상벤투역으로 갔다.
상벤투역에서부터 쇼가 시작됐다. 열차 티켓에는 출발 시간이 12시37분으로 되어 있는데 수기로 12시15분이라는 표기가 하나 더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역에서 기념품을 파는 상점 주인에게 표를 보여주며 물었다. 리스본행 열차는 어디서 타야하냐고. 기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12시37분 출발 열차는 없었다. 상점 주인은 “이 표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열차의 탑승권이 아니다. 깜퍄냐 역으로 가서 리스본행 열차를 타야 한다”라고 말했다. 헉! 태어나서 처음듣는 역 이름이었다. 그게 어딨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역무원처럼 생긴 여성에게 다가가 표를 보여주며 다시 물었다. 그 여성은 맨왼쪽 차량을 가리키며 얼른 저 차를 타라고 지시했다. 그 차를 타고 한 정거장 가서 리스본행 열차로 갈아타라고. 열차 출발 시간은 12시15분이었다. 지금 몇시냐고? 12시15분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렸다. 내 앞에서 현지 여성이 달려가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열차를 놓쳤다. 당황스러웠다. 티켓 판매원이 수기로 적은 12시15분이라는 숫자는 캄파냐행 열차의 출발 시간이었다. 그는 왜 그걸 설명하지 않았을까. 내가 현지인처럼 생겼나. 딱 봐도 관광객이고 영어로 표를 구입했는데. 그는 내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든지 아니면 귀찮아서 설명하지 않았을게다.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표값이 25.1유로라 상당히 비싸다. 관광안내소 앞에서 줄이 늘어섰다. 직원 혼자 일하는 곳이라 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표라도 바꿔야겠다고 생각해 다시 탑승권 판매처로 갔다. 오전에 내 표를 판 직원에게 방금 차를 놓쳐 표를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그가 아직 늦지 않았다며 12시25분 차를 타고 다음 역에서 빨리 갈아타라고 알려줬다. 시계를 봤다. 12시23분이었다. 다시 전속력으로 달렸다. 비록 5kg밖에 되지 않지만 덜렁거리는 스틱을 매단 배낭을 뒤에 메고 인파를 가로질러 뛰자니 쉽지 않았다. 열차문이 아직 열려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5분이 지나지 않아 캄파나 역에 도착했다. 내려서 열차 출발 정보를 알리는 정보판을 봤다. 무려 10개가 넘는 플랫폼이 있었고 나는 어떤 플랫폼에 있는 차를 타야할지 몰랐다. 잡화점 아주머니에게 표를 보여주며 어떤 플랫폼에서 타야하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나를 끌고 한참 가더니 구석에 숨겨진 전광판에 섰다. 아주머니는 전광판을 찬찬히 보더니 손가락으로 8번을 표시했다. “오브리가도(고맙습니다)”를 2번 연발한 뒤 또 뛰었다.
내가 내린 곳이 1번 플랫폼이니 8번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지하 통로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자 희안한 일이 발생했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인데 아래에서 뛰어 올라오는 정신 나간 아저씨가 있었다. 맞은편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기 싫었는지 이상한 자세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괴상망측한데다 어이도 없어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정신나간 새끼가 마지막에 점프하며 에스컬레이터에서 벗어나자 나는 다시 달렸다. 8번 플랫폼까지 전속력으로 달려 2등칸에 간신히 들어갔다. 20번 열차부터 23번까지 걸어가 지정 좌석에 앉았다. 앉아마자 기차가 춟발했다. 포르투를 떠나기가 이리 힘든 일이라니. 한심했다. 그리고 긴장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열차 안에서 평안을 찾고 3시간을 달렸다. 비몽사몽 잠들다 깨다 하면서 3시간 넘게 달렸더니 지붕 장식이 아주 멋있는 기차역에 닿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거다. 헉! 리스본역이다. 나가려고 일어났는데 열차가 출발했다. 에구 어쩌냐. 뒷좌석에 있는 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뒤돌아봤더니 동양인이 앉아있었다.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었다. 한국인은 아니었다. 표를 보여주며 기차역을 지나쳤는데 어떻게 돌아가야하냐고 묻자 그 여인은 “다음 역이 목적지인 리스본 아폴로니아다. 다음 역에 내려라"라고 말했다. 표를 다시 보니 ‘Lisboa S. Apolonia’로 적혀 있었다. 목적지에 제대로 닿은 것이다. 고맙다는 말은 연거푸 말하며 열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보니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법을 몰랐다. 택시를 타야하나. 고민하다가 구글 지도를 열었다. 역부터 숙소까지는 2.7km에 불과했다. 이제 10km는 걸어가도 되는 길이 되었다. 바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40분가량 걸어 숙소에 닿았다. 호스텔은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체크인 창구에 갔다. 마음씨 좋게 생긴 포르투갈 남자가 당신 예약을 자동 취소됐다고 말했다. 어제 나타나지 않았기 탓이란다. 무슨 소리냐. 나는 오늘부터 사흘간 예약했다고 답했다. 그 친구는 차분하게 당신 예약 내역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부킹닷컴을 열어 확인했더니 내가 멍청하게 어제부터 사흘간 예약한 것이었다. 한심했다. 그 창구 직원은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이것저것 살피더니 내 예약을 살려냈다. 그래도 어제 방값은 부킹닷컴 방침상 돌려줄 수 없으니 앞으로 이틀만 묵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감지덕지였다. “오브리가도"를 연발하며 방에 들어왔다. 머리가 모자르면 손발이 고생했다고 했다. 한심한 주인 탓에 뛰고 달린 내 다리에 미안했다.
배고팠다. 점심도 굶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뒤 9시간째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숙소에서 나와 가까운 광장 앞 노천 식당에서 바게트 빵에 고기를 넣은 음식을 맥주와 함께 우겨 넣었다. 허기가 채우자 코메르시우 광장까지 걸었다. 리스본 구시가지 가운데를 지나는 아우구스트 거리를 따라 걷다가 개선문을 지나 태주강에 접한 코메르시우 광장에 닿았다. 강변까지 바로 갔다. 방파제 앞으로 계단과 작은 모래 시장이 있었다. 모래 사장에 누웠다. 하루 동안 벌어진 해프닝이 꿈 같다.
해안으로 강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해는 4월25일 다리 쪽에서 지고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수교처럼 생긴 4월25일 다리 너머로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선 대형 예수님 상이 보였다. 오는 중에 사온 타르트 6개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고 마시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누운 자세에서 다리 사이로 반달이 올라와 있었다. 사위는 아직 밝았다. 반달이 성급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강물은 다리 앞까지 치고 올라오고 그 위에 달이 떠 있는데 오른쪽으로는 빨간 기운을 하늘에 뿌리며 석양이 지고 있었다. 반바지 아래에 드러난 종아리에 닿는 모래의 감촉이 좋았다. 관광은 카미노와 달랐다. 동선을 세심하게 짜고 관련 정보를 미리 모아야 했다. 카미노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산티아고까지 걸으면 됐지만 관광은 정보를 모아야 어디로 갈지와 그곳에서 무엇을 봐야할 지를 알 수 있다. 오늘같은 한심한 해프닝을 만들지 않으려면 좀 더 똘똘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