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모드로 리스본 명소 찍고 다니기
오후 4시쯤 지나 휴대폰 전원이 나갔다. 배터리가 방전된 거다. 피게이라 광장에서 트램 15E를 타고 벨렝 지구로 넘어갔다. 벨렝 타워에 다가가자 배터리 전원이 7%밖에 남지 않았다며 휴대전화가 구제 요청을 보냈다. 벨렝타워라도 촬영하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자 공원 중간에서 마지막 몸무림으로 부르르떨며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 휴대전화 없이는 어디를 어찌 가는지를 모르는 터라 국제 미아가 될 처지가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인간이 갖는 한계다. 빌렝탑과 발견기념비 사이에 있는 카페마다 들렀다. “니네 가게에서 맥주나 커피 마시는동안 휴대전화 충전할 수 있을까?” 가게 4곳 문전박대 당했다. “전원 코드가 없어 어렵다” “그런 거 못한다" 등 표현 방법은 달랐지만 거절이었다. 바쁜 와중에 추레한 차림의 동양인 하나가 엉뚱한 부탁을 하니 그런다고 이해할 수 있다. 내 차림은 요약하면, 얼굴은 햇빛에 타 시커멓고 수염은 덥수룩하고 조개 문양을 가운데 박은 야구모자를 쓰고 조개 문양 목걸이와 성프란치스코 나무 목걸이를 목에 걸고 가슴에 노란 화살표를 크게 박은 싸구려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 추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창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라 그런 손님 대하기 귀찮았을게다.
마지막 다섯번째 가게 들렀을 때 반전이 생겼다. 벨렝탑과 발견기념비 중간에 있는 호텔 겸 스파가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뜻밖에 흔쾌히 승락했다. 자기 가방에서 충전기를 찾더니 내 휴대폰 전원에 연결했다. 저기서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하며 손님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뉴판을 달라고 했다. 메뉴판을 건네길래 고급 와인 한병과 안주 삼아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인 믹스트 샐러드를 주문했다. 제법 비쌌다. 반쯤 누울 수 있는 소파에 발을 쭉 펴고 누웠다. 양말까지 벗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생긴 습관이다. 발 뻗을 곳 있으면 양말 벗고 발의 습기를 날리는 거다.
잠깐 기다렸더니 다른 종업원이 다가와 내 주문을 확인했다. “와인 한병을 시킨거냐? 혹시 한잔 시킨거 아니야?” 그래서 “한병 맞다”고 답했다. 얼음에 담은 와인 한병을 가져오더니 종업원이 옆에 서서 잔에 와인을 채우더니 잔을 비울 때마다 달려와서 와인을 따랐다. 안주 맛도 고급스러웠다. 5성급 호텔에서나 맛볼 수 있는 깔끔한 맛이었다. 발 뻗고 누운 앞으로는 태주 강이 흐르고 왼쪽으로 발견기념비와 4월25일 다리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벨렝탑이 가까운 고급 호텔 바에서 소파에 반쯤 누워 플렉스한 거다. 한시간 가량 호사를 누리고 휴대전화와 계산서를 가져와달라 요청했다. 휴대전화 전원을 켜고 카드로 계산하고 나왔다. 와인 한병 마시고 2주 여행 예산을 날리는 순간이다. 술에 취한 채 트램에서 졸다가 하루 17유로(조식포함) 도미터리 숙소의 침대로 들어갔다.
오전에는 철저한 관광객 모드였다. 네이버 유럽여행 카페가 추천한 리스본 관광 경로를 따라 도보로 움직였다. 상 호케, 카르무 수도원,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전망대, 피게이라 광장, 리스본대성당, 상 조르주 성을 돌아 다니며 사진 찍고 안내문 꼼꼼히 보고 다녔다. 교회에 들르면 이탈리아 피렌체 영향을 받아 목조 새김 방식으로 대리석에 상감하는 성상 제조 방법부터 중세 미술 양식까지 평소 관심없는 걸 감상하고 다녔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와 성 조르주 성에서 바이샤, 벨렝 그리고 4월25일 다리 너머 알마다 지구까지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 조르주 성 나무 그늘 밑에서 발 뻗고 대자로 누워 잤다. 그 바로 앞 나무 그늘 아래서 한 여자가 새우잠을 자고 있길래 그래도 될 듯 싶었다. 20분 자고 일어나 피게이라 광장으로 내려온 거다. 15E 트램 타고 벨렝으로 넘어가려고.
리스본 여행 2가지 팁을 남긴다. 지도를 돈 주고 사지 마라. 시내에 설치된 간이 부스에서 리스본 지도를 2.5유로에 판다. 사지 마라. 피게이라 광장이나 호시우 광장 관광 안내소에서 시내 지도를 무료를 받을 수 있다. 신트라나 카스카이스처럼 주변 도시를 오갈게 아니라면 리스보아 카드도 사지 마라. 주요 관광지에서 할인을 받지 못한다. 할인 대상 관광지를 엄청 길게 늘어놓았는데 고고학 박물관, 무기 박물관처럼 별 관심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벨렝탑이 그나마 괜찮은 대상인데 팬데믹 탓에 그마저 문을 닫았다. 따라서 리스보아 카드를 트램 타는 교통 카드로 쓰고 있다. 내일 신트라, 호카곶, 카스카이스 다녀오는 교통 카드로 사용할 생각이다. 호시우 광장 위로 조금 올라가면 바튼 언덕길을 오가는 아주 오래된 트램이 있다. 올라가는데 2유로, 내려오는데 2유로 받고 운영한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고 탔다가는 실망스러울거다. 5분이면 걸어올라 갈 수 있는 좁은 언덕길을 그냥 오가는 거다. 이거 탔다면 내릴 때 “이거 뭐지?”할거다.
내일은 리스본 교외로 나간다. 신트라, 호카곶, 카스카이스 같은 외곽 도시가 멋있다고 하니 기대된다. 그나저나 배탈이나 멈췄으면 좋겠다. 물을 갈았더니 형편없는 대장이 말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