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5일] 리스본에서 1시간 거리...열차, 지하철, 버스로 이동
리스본 근교에는 명소가 많다. 리스본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하는 곳들이다. 신트라(Sintra), 호카곶(Cabo de Roca), 카스카이스(Cascais)가 그곳이다. 전차나 버스로 1시간 가면 닿는다. 신트라에는 동화 속에나 나올만한 궁전이 산 정상에 있고 그 바로 아래 무어인이 건설한 산중 요새 자리한다. 호카곶은 유럽 서쪽 끝이다. 깎아 지르는 절벽 아래로 대서양을 마주하는 곳이다. 호카곶에서 머지 않은 곳에 해변 휴양도시 카스카이스가 있다. 신트라, 호카곶, 카스카이스 순으로 동선을 짜면 볼 곳은 빠지지 않고 챙겨 보면서도 하루만에 리스본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오전 9시 호시우 광장에 연한 기차역에서 전차를 타고 50분가량 가면 신트라역에 도착한다.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10분가량 걸으면 신트라 궁전(박물관)에 닿는다. 여기서 맞은편 골목으로 접어들면 아기자기하게 이쁜 골목길이 이어지고 신트라 언덕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온다. 언덕 초입에서 무어인 요새까지는 걸어서 42분, 페나 궁전까지는 62분 걸린다는 안내판이 나온다. 빌라 데 사세티라는 산책로를 따라 오르는 걸 추천한다. 자연미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건축물이 나오고 정성들여 가꾼 정원도 볼 수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숲은 우거지고 암벽의 위세는 더해진다. 이곳은 암벽타기 명소로 알려질 정도로 험준하다. 가파른 언덕길을 30분 오르자 저멀리 산 정상에 성체가 가까이 다가왔다.
산 중턱에서 올려다본 요새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무어인이 서기 711년 지블로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반도로 처들어왔다. 5년만에 북쪽 추운 곳을 제외하고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다. 무어인은 리스본 북쪽 방어기지로서 신트라 산중에 성체를 건설했다. 이곳에서는 대서양이나 리스본 북쪽에서 접근하는 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천혜의 요새다. 100만대군이 쳐들어와도 산을 오르다 지치고 높이 치솟은 성벽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할 듯하다. 이 성은 공략하려면 성 주위를 포위하고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하다. 무어인들은 성 안팎에 곡식을 저장하는 사일로를 여러곳에 파놓았다. 역시 이 성의 약점은 군량 조달이었을 것이다.
요새 모양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10분가량 더 걸어오르면 성 입구가 나온다. 8유로를 내고 입장하면 입구 양쪽으로 성벽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이어지고 정면에 우물 2곳이 자리한다.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오르면 성 방어벽을 따라 걸으며 발 아래 대서양이나 북쪽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저멀리 대서양은 하늘과 구분할 수 없이 파랗고 가까이 평야는 낮은 구릉을 무시하고 평평하게 뻗어나갔다. 바로 아래에는 신트라 궁전을 비롯해 집들이 미니어처처럼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남산 오르는 것보다 어렵지 않으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산 오르기 싫거나 무릎이나 발목이 시원치 않은 이들은 관광객을 요새 바로 앞까지 실어나르는 삼륜차들을 타면 된다.
성벽 위에 오른 계단을 따라 걷기가 만만치 않다. 돌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세운 감시탑들을 오르려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더 올라야 한다. 산을 따라 성체가 만들어지다보니 가장 높은 감시탑까지 오르면 숨이 가파라진다. 가장 높은 감시탑에서 더 높은 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짙은 갈색과 노랑색이 선명한 성이 눈에 들어온다. 페르디난드2세가 1838년 수도원을 사들여 확장한 페나 궁전이다. 무어인 요새에서 10분가량 걸으면 입구가 나온다. 14유로 내면 페나 궁전 안팎을 볼 수 있다. 침실, 서재 등 내부 시설과 갖가지 유물에 관심이 없어 성 외부만 보겠다면 7유로만 내면 된다.
입구에 들어서 5분 오르막을 걸어 오르면 아줄레드 타일로 장식된 멋진 문이 나오고 그 뒤로 노랑과 짙은 갈색으로 채색된 궁전이 나온다. 방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요리조리 골몰하는 성체들과 달리 이 궁전은 오로지 이쁘게 만들겠다고 마음 먹고 지었다. 벽 타일에 아줄레드 문양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고 성벽은 노랗다. 노란 궁전 옆에는 짙은 갈색의 시계탑이 멋지게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성벽 길을 따라 걸으면 무어인 요새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동서남북 사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페르디난트 2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 페나 궁전의 건설이라고 하니 참 무능한 왕이었거나 페나 궁전의 그만한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게 아닐까 싶다.
페르디난트2세는 오스트리아 비에나 출신다. 1836년 포르투갈 마리아2세 여왕과 결혼했고 졸지에 왕에 올랐다. 마리아2세 여왕이 죽은 뒤 엘리스 헨슬러와 재혼했다. 스위스 출신 미국인이자 서정 가수이 헨슬러 부인은 페르디난트2세와 결혼한 뒤 에들라 백작부인에 서임됐다. 왕과 왕비는 줄곧 페나 궁전에서 살았다. 후대에도 왕과 왕비가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왕가가 쓰던 침실, 서재, 욕실 등이 깨끗이 보존되어 있다. 화려한 문양과 새김 기술이 탁월한 가구나 세라믹 장식품들이 궁전 내부를 꾸미고 있다. 지금 당장 그곳에서 왕가가 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중정을 중심으로 둘레길이 1층과 2층으로 이어졌다. 길 끝에는 궁전 중간층 발코니로 외부와 연결되었다. 외부 정원에서는 성 안팎을 내려다볼 수 있다. 정원은 성체를 두르는 방어벽을 따라 만든 순찰길로 이어진다.
반나절 동안 무어인 요새나 페나 궁전을 살피고 돌아다니다 궁전 앞에서 버스 434번을 타고 다시 신트라 역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버스 403으로 갈아타고 호카곶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40분가량 졸다보니 어느새 싯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에 연한 절벽 앞에서 내려 십자가가 꼭대기에 달린 탑을 향해 걸었다. 이곳에 유럽의 서쪽 끝 호카곶이다. 땅은 여기서 멈춘다. 그 앞에는 하늘과 맞닿아 구분이 가지 않은 파란 수평선이 호를 그리며 펼쳐진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빨간 등대가 서있다. 왼쪽으로는 바닷물까지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조심스레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갔다. 그곳까지 내려오는 관광객은 없었다. 자칫 미끄러지거나 돌에 걸려 넘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 그곳에서 천길 낭떠러지로 끊어지는 절벽과 바다 가운데 솟은 작은 돌 기둥을 감상하며 한참을 보냈다.
해가 물비늘을 만들기 시작했다. 2시간 안에 해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거다. 더 늦기 전에 카스카이스 해변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석양을 보고 싶었다.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403번을 타고 40분가량 달려 카스카이스에 닿았다. 모래사장은 100m도 되지 않고 크고 작은 요트가 엄청나게 정박하고 있었다. 멋지고 세련된 상점과 식당들이 해변을 따라 밀집해 있었다. 전형적인 해변 관광도시 같았다. 해안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삼각형 성채가 나왔다. 리스본 벨렝탑과 자매지간이라고 한다. 바다에 연한 도시를 지킬 수 있게 설계했다고 한다. 설립 목적과 달리 성은 호텔로 개조되었다. 다소 위협적인 외형이 무색하다. 성 앞으로는 요트들이 밀집대형으로 정박되어 있었다. 성 너머 해안으로는 최근에 지은 듯한 고급스런 상가와 식당가가 자리했다.
시 중심이라할 수 있는 모레사장 앞 바이사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그곳 뒷골목 식당에서 포르투갈 전통 해산물 요리를 주문했다. 온갖 해산물에 밥을 넣어서 끓인 요리를 시켰다. 우리 해물탕에 밥을 넣어 끓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 짰다. 아니 독살스럽게 짰다.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 악착같이 다 먹었다. 다음에는 안먹을란다. 포르투갈 전통 해산물 요리는 내 입맛에 맞지 않은걸로. 그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기차역에 가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탔다. 카스카이스는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줄을 그으면 그 끝에 있는 곳이다. 기차는 직선으로 달려 벨렝지구까지 왔다. 그곳에서 지하철 녹색선으로 갈아타고 두정거장 지나 출발지인 호시우 광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낯익은 곳이라고 반가웠다.
내일은 리스본을 떠난다. 이베리아 남쪽 끝에 있는 라고스로 간다. 한국 관광객이 별로 가지 않는 곳이다. 정보도 거의 없다. 바다에 접한 해안 절벽과 그 앞으로 펼쳐진 모래사장이 멋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