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와 세계 최고 다툴만...오징어게임으로 맺어진 유럽 소녀들과 인연
체코 소녀 사라와 벨기에 소녀 아델이 늦게까지 자길래 침대에서 나왔다. 숙소에서 600m 떨어진 라고스 성으로 향했다. 구시가지 중심지라 하길래 동네 마실나가 듯 다녀왔다. 바다로 접근하는 적을 막기에는 키 낮은 성이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었다. 성 문으로 들어가보니 성내는 주거지로 밀집해 있어 성문과 성벽만 남았을 뿐이다. 상당수 집들은 폐가처럼 버려져 있다. 별다른 특색이 보이지 않아 아침식사하라 숙소 앞 식당을 찾았다. 커피와 크로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두 소녀는 여전히 자고 있다. 오늘 오전 떠난다고 했는데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가야했다. 오후 2시30분 베나길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한터라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라고스 해안을 다 돌아야 한다. 10km 안팎 해안선을 따라 걸어야 하고 5개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도 해야하는 터라 시간이 촉박했다. 자고 있는 소녀들에게 침묵의 인사를 건네고 문을 닫고 숙소를 나섰다.
폰츠 다 피에다데(Ponts da Piedade) 곶을 비롯해 바타타(Batata), 핀항오(Pinhao), 도나 아나(Dona Ana), 카밀로(Camilo), 포르투 데 모스(이끼 항구 Porto de Mos) 모래 해변을 걸어서 들렀다. 해안길을 따라 바다를 보고 걷는 길이라 지루하지 않았다. 해안 절벽을 바닷물이 깎고 비와 바람이 다듬어 만든 온갖 모양의 기암괴석이 10km 해안선을 따라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여러 나라 해변을 돌아다녔지만 이곳보다 이쁜 해안을 보지 못했다. 베나길 가는 보트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도 하와이 해변과 함께 월드 베스트로 꼽을만하다고 말했다.
바다 쪽으로 난 해안 절벽 단면은 톤을 달리하는 노란색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바다가 뚫어놓은 해안 동굴이 절벽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깊은 곳에 모래사장을 숨겨놓은 곳이 있는가 하면 지붕이 뚫려 있어 햇빛이 동굴 안쪽으로 비춘다. 절벽 앞에는 육지와 아예 떨어져 홀로 바다 위로 치솟아 서있는 돌섬도 있다. 바다 쪽으로 병풍처럼 튀어 나온 절벽 사이사이 예쁘고 아기자기한 모래 해변이 칸칸이 숨겨져 있다. 해변을 칸막이처럼 가로 막은 절벽에는 구멍이 뚫어 모래사장을 잇기도 한다. 출입구 역할을 수행하는 돌 구멍 사이로 나가면 10명 내외가 모이는 꽉찰만한 작은 해변이 숨어있다.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절벽을 따라 바다 가까이 다가가면 천길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다. 바다는 가까운 곳은 에메랄드 빛, 멀리는 싯푸른 색으로 빛나고 그 위로는 파란 하늘이 자연의 걸작들을 담고 있다. 들르는 작은 모래해변마다 관광객 1~2명이 책을 읽거나 바다 수영하고 있다. 규모가 큰 해변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모스 해변은 한여름 해수욕장처럼 붐비고 그 앞에 있는 식당 2곳은 예약이 꽉차있어 앉아서 음식을 주문하기도 어려웠다. 오후 2시15분 베나길 투어프로그램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동네 가운데를 가로 질렀다. 구시가지와 달리 해안로에 접한 집들은 고급스러웠다. 고급 해변 휴양지에 온 듯 5성급 호텔도 있고 집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늦지 않게 베나길 행 보트에 올랐다. 쾌속정을 타고 30분가량 엄청난 속도로 달려 베나길에 도착했다. 베나길은 바다가 절벽을 반복해 치면서 절벽 안쪽으로 큰 동굴과 모래사장을 만들었는데 그 천정이 뚫리면서 신비로운 광경을 보여준다. 절벽 깊은 곳에 모래 해변, 그 위로 뚫린 구멍에서 햇빛이 들어와 수영복 차림의 관광객들로 차고 넘친다. 그곳에서 라고스로 돌아오면서 바다와 바람이 석회암 절벽을 깎고 다듬어 만든 자연의 걸작들을 일일이 들렸다. 가장 크고 깊은 동굴 안쪽에는 바다 특유의 비린내가 가득하고 안개가 낀 듯 뿌옇다. 규모가 큰 동물 2곳에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천정 구멍을 통해 햇빛이 내렸다. 해안 절벽을 따라 형성된 어촌마을이 눈에 띄고 해수욕장이 곳곳에 자리하면서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2시간가량 베나길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사라와 아델이 남겨둔 메모가 눈에 띄었다. 벨기에에 꼭 들리라는 내용과 함께 자기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 포르투갈 남단 라고스에서 체코와 벨기에 출신 20대 소녀들의 전화번호를 딴 것이다. 왓츠앱에 전화번호 저장해 놓고 언젠가 벨기에 가면 연락해야겠다.
이로써 웬만한 유럽 국가들에는 연락할만한 친구들이 하나씩 두게 됐다. 영국에는 제임스, 네덜란드에는 레이비, 덴마크에는 퍼널라, 라트비아에는 아르투어, 에스토니아에는 라우라, 프랑스에는 다비드, 오스트리아에는 하이디, 독일에는 헨리, 폴란드에는 도미니카, 이탈리아에는 한나, 스페인에는 밀리나가 있다. 이제 체코에는 사라, 벨기에는 아델이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에는 브라이언, 홉 그리고 그녀의 한국인 남자친구 김용빈이 있다. 이번 여행으로 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여행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여정이나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