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청년 조슈아와 프랑스 아저씨 앙드레와 불닭볶음면 먹으로 수다
느즈막히 일어나 어제 사둔 불닭볶음면을 먹고 우유로 속을 달래고 해변으로 향했다. 룰루레몬 반바지를 입고 방수팩에 휴대전화를 넣고 옆으로 찼다. 수경도 하나 장만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도나아나 해변에서 1시간 가량 수영했다. 실내 수영장과 바다는 달랐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물결이 일렁이다 보니 맘껏 수영하기 힘들었다. 상당히 깊은 곳까지 나갔지만 깊이는 가슴팍 정도 찼다. 바다에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골고루 했는데 확실히 바다가 어렵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 익숙해지자 수영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젖은 몸 그대로 반바지만 걸친 채 숙소까지 돌아왔다. 햇빛이 강렬해 몸이 타는게 느껴졌다.
숙소로 돌아오니 제시가 앞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제시는 호주인으로 이곳에서 머물면서 호스텔 일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호스텔 주인장으로부터 돈을 받는지는 모르겠다. 라고스에서 머물면서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서핑 시즌이 오면 서핑을 즐기는 한량인 듯하다. 이 친구에게 하루 더 묵겠다고 말하고 하루치 숙박비 12유로(1만6500원가량)를 지불했다. 한방에 6명 쓰는 도미토리룸이다보니 숙박비가 싸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는 여행객이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사용한다. 나처럼 전 세계에서 온 이들을 만나기 위해 다인룸에 묵는 이들도 있고.
잠시 쉰 뒤 오후 3시쯤 나와 이베리아 남서쪽 끝단 사그레스 마을행 버스를 탔다. 남서쪽 끝에서 석양을 보고 싶었다. 하늘을 뒤덮는 샛빨간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다. 라고스성 앞에서 47번 버스를 타고 한시간 졸다보니 사그레스 요새에 닿았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 걸어 들어가는 절벽 위에 옅은 노란색 성벽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성 뒷면은 성벽이 없었다. 사그레스 요새는 육지 쪽으로면 방어벽이 있고 바다 쪽으로는 없다. 바다 쪽 방벽은 필요없었다. 뒷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보니 그리로 누가 올라오리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청년 2명이 장난 삼아 돌을 하나 들어 절벽 아래로 던졌다. 한참 뒤에 돌이 바다에 떨어지는 소리가 올라왔다. 낭떠러지 한곳에서는 아저씨 2명이 절벽 아래로 낚시대를 던져 놓고 위태롭게 해안 낚시를 즐기고 있다.
바다와 하늘이 닿는 곳을 응시하며 누웠다. 바다로 접근하는 적 함대를 향해 포를 발사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시멘트 포대 위에 누웠다. 30분가량 자고 일어나보니 해가 수면 위로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아쉽게 석양은 보지 못했다. 라고스로 가는 막차가 오후 6시30분에 떠나는 터라 석양이 물들기 전에 자리를 떠야했다. 버스 타고 사그레스를 빠져나오는 중 하늘에 빨갛게 타오르는 석양을 뒤로 하고 라고스로 향했다. 한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라고스성 앞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서 마지막 밤이다. 맥주 2명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에는 프랑스인 앙드레와 이탈리아인 마르첼로가 들어와 있었다. 앙드레는 56세로 전 세계 100여개 국가를 여행하며 살고 있다.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음악을 듣고 있더니 대뜸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아니 한국인인데. 그랬더니 북한 사람이냐고 묻길래 아니 남한 사람이라고 했다. 통성명하고 그리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 나보다 2살 많은게 맞나 싶다. 나보다 적어도 10살은 많아 보인다. 마르첼로는 친구들과 밤낚시한다고 부리나케 나갔다.
남은 불닭볶음면을 하기 위해 키친으로 들어갔더니 독일 19세 청년 조슈아가 흥미를 보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급기야 먹어볼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인도 먹기 힘들어할만큼 맵다고 경고했는데 굳이 먹겠다고 해서 먹어보라고 했다. 호기롭게 스파게티처럼 한포크 집더니 입에 넣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상상한 그대로다. 갑자기 튀어 나가더니 물을 마셨고 남은 불닭볶음면은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그러니깐 내가 맵다고 경고했는데. 그때 식당으로 앙드레가 프랑스식 샐러드를 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한국인 아저씨, 독일인 청년, 프랑스 아저씨가 1시간가량 서로 여행담을 나누었다.
조슈아는 대학에 갓 입학해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다.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번 여행이 끝나면 전공을 바꾸려고 한다. 디자인 같이 창의력이 요구되는 쪽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 아저씨에게 흥미를 보였다. 라고스에 온지 얼마나 됐나,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느냐, 한국 라디오에서는 한국어 음악이 많이 나오냐 아님 영어로 된 노래가 많이 나오냐 등 한참 물었다. 조슈아는 영어를 잘했다. 고등학교에서 정치, 사회 등 일부 과목을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반면 앙드레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전 세계 100여개 국가를 여행하면서 체득한 생존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같은 극동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방문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닭볶음면을 다 먹고 나서도 한참 떠들다가 각자 침대로 들어갔다. 내일을 기약하며.
내일 오전 스페인 세비야로 향한다. 안달루시아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비야에서 3~4박한 뒤 코르도바, 론다를 거쳐 그라나다로 들어갈 예정이다. 현지 사정에 따라 일정이 바뀔 여지가 있다. 무슨 숙제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이므로 당시 기분에 맞게 움직이려 한다. 여행도 이제 한달반이 지나다보니 여행을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는 듯하다. 나처럼 숙제하듯 여행하는 이는 없는 듯하다. 이제 다르게 살자. 그럴 나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