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0일 팜플로나 가는 길서 맞은 위기
수비리에서 팜플로타로 이어지는 길은 별로다. 수비리를 벗어나 코스로 접어들자마자 시멘트 공장이 나왔다. 차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도로가 나오다 숲길이 단속적으로 이어진다. 시멘트 공장 시설 탓에 맥이 끊긴 태백산맥 어딘가를 떠올리게 했다. 도착지 팜플로타도 번잡스러웠다. 마을을 감싼 거대한 성벽이 인상적이었지만 성벽 안 고시가지는 술집과 식당이 뒤엉켜 혼잡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산타마리아 팜플로타 성당이 옛 도시로서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12세기까지 올라가는 역사,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이 뒤섞인 교회 건축물, 그 안에 든 수도원 건물 속 통로를 걷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성당 앞에 자리한 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도 근사했다. 이 알베르게에 묵을게 아니라면 팜플로타는 그냥 지나쳐가는게 나을 뻔했다. 아니면 5km 못미친 곳에 있는 아레라는 시골 마을이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우니 하룻밤 묵는게 좋다.
전날 길에서 만난 순레객들과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신 탓인지 몸 상태가 걷는 내내 좋지 않았다. 쉽게 지친데다 숙소에 빨리 도착해 쉬고 싶다는 마음에 휴식 없이 걷다보니 몸이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헤스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에는 남는 침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캠슐룸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공립 알베르게보다 2배나 되는 요금을 내고 캡슐룸에 벌레처럼 움크리고 들어가 들어가 끙끙 앓았다. 순레여행이 힘들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위기가 예상대로 일찍 찾아왔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다가는 큰일날 듯해 몸을 억지로 일으켜 가까운 식당에 가서 오리만한 닭다리와 샐러드를 콜라와 함께 먹었다. 15유로나 냈다.
음식을 먹고 나니 기운이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산타마리아 성당에 들렀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면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팜플로나가 자랑하는 명소를 둘러보고 싶었다, 5유로나 내고 들어갔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만큼 생경스러우면서도 특이한 감동을 받았다. 30분가량 성당 내부와 수도원 통로를 따라 걸으며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 몸이 다시 신호를 보냈다. 그만 쏘다니고 숙소로 들어가 몸을 누이라고.
고치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 앞에서 만난 라트비아 청년 아르투어와 내일 아침 6시에 만나 함께 푸엔타 라 레이나로 가자고 약속한 터였다. 화장실에 가서 속을 완전히 비워내고 그냥 끙끙거리며 누워 잤다. 다음날 새벽 5시30분 잠에서 깨 서둘러 짐 챙겨서 나왔더니 아루투어가 벌써 사거리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친구와 함께 움직이니 듬직하기 그지 없다. 아루투어는 27세 청년 얘술가로 키 2미터가 넘는다. 그는 카미노에서 만나는 순례객들과 허물없이 어울린다. 길 거리에서 자전거 탄 이와 대화를 나누던 짚시풍 차림을 한 여인이 함께 걷자고 제안했다. 27세 우루과이 여인 마르셀라는 스페인 남부 말레가에 친구 초청으로 왔다가 온 김에 카미노를 걷겠다고 나섰다. 팜플라다부터 시작하려 했으나 어디로 갈 지 몰라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다가 우리를 만났다.
마르셀라는 조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항상 유쾌하다. 걷는 내내 순레객들과 떠들다가 혼자 걸을 때는 노래를 부른다. 쉬는 시간이면 길바닥에서 눕거나 벽에 기대어 상당히 어려운 요가 자세를 취했다. 요가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다. 함께 걷는 내내 유쾌했지만 정신이 없었다. 카미노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개성이 천차만별이다. 홀로 아무 말도 없이 쥐 죽은 듯이 다니는 북유럽 여성이 있는가 하면 마르셀라나 에바처럼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떠들면서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북유럽 사람과 남미인들은 다르다. 북유럽인이 조금 우울하고 침착하다면 남미인들은 그냥 행복하고 정신없다. 마르셀라는 노래하고 춤추고 대화한다. 한번은 인심 좋은 스페인 아줌마와 대화하다 우리 일행이 집안 정원을 초청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무루셀로 지방 특유의 안뜰에 들어가 아주머니가 평생 가꾼 이쁜 정원을 둘러보고 나왔다.
팜플로나를 떠나 푸엔타 라 레이나로 오는 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밀밭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앙증맞은 숲들이 산을 배경으로 양떼처럼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해바라기 밭이 갑자기 나타났다. 제철이 아니다보니 시들어 보기 흉했지만 한창 필 때는 화려한 장관을 연출할 듯하다. 10km 남짓 산길을 걸어 엘 페르돈 산의 정상에 닿는다. 해발 770미터 엘 페로든 산은 오레가/론세스발레스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로 가려면 넘어야 한다. 19세기 중반까지 엘 페드론에는 성마리아에 바치는 교회와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교회 성벽 일부만 남아있다. 순레객들이 정상에 닿으면 죄를 용서받고 죽기 전 정신의 안식을 뒤찾는다고 한다.
해발 770미터 엘 페드돈 정상에는 풍력발전소가 있다. 나바레 지방에 세워진 첫번째 발전소다. 높이 40미터 위에 설치된 20미터 길이 날개가 1996년부터 돌아가며 지역 주민에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나바레 지방 조각가 빈센테 갈베테가 풍력발전소 개장을 기념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순례객들에게 바치는 철제 구조물을 헌정했다. 순례 행렬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인간 크기의 14개 철물로 형상화했다. 맨 앞에는 순레가 시작되던 때 입었을만한 차림의 순례객이 지팡이를 짚고 가는 거라면 뒤로 갈수록 말과 당나귀 같은 운송 수단도 나오고 맨 뒷에는 요즘 등산복 차림의 커플이 따른다. 이곳에서 콤보스텔레까지 700km 남았다. 순레객들은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산티아고 순례의 인증샷을 찍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정상에서 가파른 자갈길을 내려오다보면 무루팔라사다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동화에서는 나올만한 교회와 광장 가운데 우물, 석벽으로 두른 아치 문을 지나면 마을 푸엔타 라 라에나가 나온다. 종탑이 우뚝 솟은 2개 성당이 자리하고 그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이쁜 마을이다. 입구에 자리한 공립 알베르게에 묵었다. 해빛은 눈부시게 내리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바람이 시원하다. 알베르게 뒷마당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 20여명이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온 순례객이자 요가 강사의 지도로 요가가 한창이다.
라트비아 청년 예술가 아르투어가 피레네 초입에서 함께 걷는 영국 요크셔 출신 순례객 제임스에게 건네는 말을 엿들었다. "카미노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인생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한달 뒤 일상으로 돌아간다." 순례객들은 길 위에서 친구를 만나고 소통하고 우정을 쌓는다. 드물긴 하지만 이곳에서 만나 썸타다가 사랑에 빠지는 순례개들도 있다. 순례를 마치고 이어지는 커플도 있지만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
마음에 맞는 친구와는 한동안 걷다가 관계가 주는 부담으로 속도를 늦추거나 당겨서 부담스런 인연을 피하기도 한다. 혼자 걸으면 외로움을 느끼다가 함께 걸으면 다시 혼자만의 걷기가 그리워진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샤워한 뒤 고단한 다리를 쉬며 망중한을 즐기다가도 친구들이 부르면 나가 음악을 함께 들으며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다시 흥에 겨워 즐거워진다. 살면서 다양한 인연과 엮이면서 좋아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부담스럽고 함께 하길 원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는 그 모든 인연의 끈이 순식간에 이어지고 끊어지는 길이다. 그러니 1인칭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게임과 비슷하다는 표현은 그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