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스승이자 친구 브라이언과 헤어지다

[9월13일] 카미노 친구들 열전

by 이철현

이탈리아 순례객들은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 욋츠앱 단톡방을 만들고 숙소를 단체로 에약하고 함께 묵는다. 그렇다고 폐쇄적이지는 않다. 라트비아 청년 아르투어와 나를 무리에 넣은 걸 보면. 이와 달리 북유럽 순례객들은 홀로 움직인다.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순례객들은 전 세계 순례객과 자연스럽게 함께 걷다가 또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 부부, 자매, 친구 2명이 짝으로 온 이들은 아무래도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KakaoTalk_Photo_2021-09-14-04-35-24 001.jpeg 아 사진은 레이비의 미모를 절반도 담지 못했다.

생장에서 출발한지 일주일째다. 길 위에서 참 많은 인연을 맺었다. 산티아고 순레길이 주는 최고의 축복은 카미노 친구들일게다. 길 위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를 알아가고 우정이 깊어진다. 카미노 친구 중에는 스승 같은 이도 있고 더없이 듬직한 친구도 있다. 보기만해도 사랑스러운 이도 있고 아끼고 보살펴주고 싶은 이도 있다. 그들과 짧지만 압축적으로 우정을 쌓는다. 사랑을 느끼는 대상도 생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지치거나 부상으로 하루 걷는 거리를 줄이거나 특정 도시에서 하루 더 묵는 이와는 자연스레 헤어진다. 그리 만나고 이해하고 친해지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인연들을 소개하지고 한다.

KakaoTalk_Photo_2021-09-14-04-35-44 009.jpeg 왼쪽부터 브라이언, 레이비, 파넬라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다.

미국인 브라이언(61세)는 은퇴한 사업가다. 피레레 산맥을 함께 넘어온 동지다. 유머가 넘치고 사려가 깊다. 생김새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영화배우 우디 헤럴슨을 반씩 섞어놓았다. 브라이언은 만나는 사람마다 돈독한 인연을 만들고 저녁식사 모임을 주도한다. 이 친구가 너무 좋다. 브라이언은 세쌍둥이 아버지다. 부인은 간호사 출신으로 역시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가족에게 나를 소개할 정도로 친해졌다. 마냥 성격 좋은 아저씨 같다. 그러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온 부부와 함께 식사하다가 브라이언이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영국인 남편과 공장 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줬다. 대화 중 브라이언이 소프트웨어를 창업해 상당 규모로 키웠다가 얼마전 매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상당한 부자였던 거다.

KakaoTalk_Photo_2021-09-14-04-35-53 014.jpeg 무리 지어 움직이는 이탈리아인들. 뒷줄 가운데가 안나다.

브라이언은 만나는 순레객마다 따뜻한 인연을 만들어낸다. 나와는 길을 걷다가 나무에 걸린 블루베리, 피컨, 무화과를 따서 준다. 모르는 과일을 먹기 주저하는 나를 놀리며 쾌활하게 웃는다. 브라질에서 온 루시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브라이언은 아주 천천히 영어로 말하며 루시를 끝까지 챙긴다. 루시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서 들르는 도시마다 성당이란 성당은 다 들른다. 그걸 끝까지 동행하는 이가 브라이언이다. 오스트리아 하이디도 그런 브라이언의 배려심을 보고 각별히 친구로 여긴다. 둘은 길 위에서 만난 부부라고 서로를 칭할 정도다. 참, 나는 길에서 만나 입양한 아들이란다. 그렇게 나는 쉰 넘어서 환갑을 맞은 친구의 아들이 됐다.


브라이언은 로그로뇨에서 하루 더 목기로 했다. 지친 다리도 쉬고 빨레도 하고 와인을 즐기면서 재충전하려는 거다. 9월13일은 마침 하이디 생일이라 비오는 로그로뇨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브라이언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웃고 떠들면서 3시간에 걸친 저녁식사를 마쳤다. 모두 브라이언과 헤어짐을 너무 아쉬워했다. 인격이나 능력 면에서 참 훌륭한 어른이다. 브라이언 같이 나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내 깜량으로는 택도 안될 듯하다. 길 위에서 만난 스승이자 친구 브라이언과는 그리 헤어졌다.

KakaoTalk_Photo_2021-09-14-04-35-48 011.jpeg 레이비와 페닐라는 정말 잘 걷는다. 바이킹의 후손들 답다. 평원을 걷는 레이비와 페닐라.

또 다른 이별도 있었다. 피레네를 넘자마자 친해진 이가 덴마크 소녀 페닐라(26)다. 차분하고 조용하다. 어린 나이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품격이 느껴진다. 참, 잘 자랐구나 싶다. 페닐라는 호기심이 많다. 낯선 동양에서 온 나와 함께 움직이며 참 많은 걸 묻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여행 내내 나랑 함께 움직이려 한다. 그녀는 성직자가 되고 싶어한다. 카미노를 마치면 덴마크로 돌아가 성직자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고 남자 친구를 많이 사랑한다. 나는 페닐라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피레네 산맥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산에서 천사가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페닐라는 로그로뇨까지 오지 않고 9km 못미친 비아나라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발바닥 통증이 심해지고 햇빛에 붉어진 다리를 치료하고 다시 떠나기 위해서다. 페닐라 별명은 산 영소다. 걷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특히 산에서 내려올 때는 날아다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걷는 속도가 매우 빠른 나를 지치지 않고 따라온다. 오르막길에서는 나보다 앞서나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카미노에서 가장 빠른 커플이 되었다. 독일 병정처럼거침없이 진군하는 독일인 자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리 인정을 받았다. 함께 걸으며 너무 친해졌다. 페닐라 가족도 나를 안다고 한다. 걷기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면 집에 전화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다보니 자연스례 나에 대해 말했을거다.

KakaoTalk_Photo_2021-09-12-07-25-04 007.jpeg 엘 페르론 산으로 가는 길을 라트비아 청년 에술가 아루투어와 함께 걸었다.

페널리와 헤어지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너를 잊지 못할거다. 카미노에서 아주 귀중한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라고 전하자 페널라는 담당하게 "잊지 못할거다. 함께 만든 추억에 감사한다. 우리 가족도 당신을 알 정도다."라고 답했다. 그리 나의 천사 페닐라를 비아나에 남겨두고 로그로뇨로 향했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 페널라와 헤어지자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인연이 생겼다. 네덜란드에서 온 미인 레이비(22)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이쁘다. 키는 180cm가 넘고 몸에 군살이 하나 없다. 철저한 비건(채식주의자)인데다 걷기와 뛰기 등 운동을 좋아하며 자기를 가꾼다. 네덜란드인치고는 영어를 아주 잘한다. 거의 원어민 수준이다.


레이비는 거침없다. 순례객들과 구김살 없이 대화하고 친해진다. 얼굴에 항상 웃음을 가득 담고 상대를 처다보며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넋이 나갈 정도다. 에스테야를 떠나 로스 아르코스로 가는 길에서 혼자 또띠야에다 커피를 마시고 있자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전날 늦게까지 술자리를 함께 인연 덕인지 자연스레 동석했다. 앞에서 초콜렛에다 커피를 마시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내가 장난삼아 말을 건넸다. "레이비는 어떻게 한결같이 그리 아름다울 수있냐?" 레이비는 특유의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하지 않겠다. 비밀이다."라고 답했다. 사흘째 같은 숙소에 묵다보니 사흘째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KakaoTalk_Photo_2021-09-12-07-25-00 005.jpeg 카미노에서 만난 친구들은 축복이다.

레이비는 소설을 쓰는 남자친구를 아주 좋아한다. 학부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문화역사학 학위를 취득하려 한다. 무엇을 하고 살지 진지하고 고민하고 있다. 부모님은 레이비 진로에 관여하지 않는다. 레이비를 믿고 맡긴다. 내가 "영화배우나 모델해도 되지 않겠냐"라고 물었더니 주저하는 기색없이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치고 진로를 결정할거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자기 외모만큼 아름답운 인생을 살기를 기원한다.


라트비아인 아루투어(27)는 피레네 산맥 초입에서 만나 여러 코스를 함께 걸으며 친해졌다. 키 2m 몸무게 100kg 넘는 거구다. 함께 걸으면 듬직하다. 덩치와 달리 아주 사색적이다. 산티아고 순레길은 이번이 두번째다. 게임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가 퇴직하려 한다. 그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창작 일이 관심이 많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혼자 걷는 걸 좋아한다. 나와도 2코스 함께 걷다가 3번째 코스에서는 혼자 걷고 싶다고 말하더니 줄곧 혼자 걷는다. "산티아고 순레길 걷기는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다."라는 멋진 표현도 그의 작품이다. 고향에 있는 부인을 아주 사랑하고 수시로 부인과 통화한다. 그가 예술가로서 성공하길 바란다.

크누트 페닐레와 함께.jpeg 페닐리와 함게 사진을 찍자 노르웨이 크누트가 끼어들었다.

이탈리아인 안나(25)는 의대를 막 졸업하고 소아과 인턴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다시 바빠지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한다. 이번 순례길을 걷는 이탈리아인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다. 하루는 혼자 걷고 싶어서 이탈리아 행군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영어가 어설퍼서 깊은 대화를 나누기 힘들어졌지만 나와 마주칠 때마다 "하이 리~"라고 부르며 서슴없이 다가온다. 정신 없는 이탈리아인들과 달리 눈빛이 진진하다. 참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린 환자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의사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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