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이유를 갖고 카미노를 걷다

[10월3일] Las Herrerias - Triastela

by 이철현

전날밤 라스 헤레리아스라는 시골 마을에서 허름한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미국 버몬트 출신 조지는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해 로빈 윌리엄스를 연상시키는 조지와 알베르게 근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알베르게에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근처 레스토랑에 갔다가 그곳에서 맥주 마시는 조지와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동석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해 카미노를 걸었고 그곳에서 머물고 싶어 자원봉사자로 일한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필요한만큼만 벌고 남은 시간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살고 있다. 그는 46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주 행복한 얼굴을 갖고 있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4-36.jpeg 내가 산장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기념 사진 찍어야 한다며 먹던 것도 내려놓고 몰려들었다.

조지가 PCT라는 여행 루트를 알려주었다. 맥시코에서 시작해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걷다가 로키산맥을 넘어 캐나다에 이르는 걷기 코스를 알려주었다. 사람에 따라 여행 기간은 다르다고 한다. 빨리 걷는 이들은 3개월 늦어도 6개월이면 완주한다. 사흘간은 텐트에서 자고 나흘째 호텔에 묵으며 이동한다고 한다. 아주 매력적이다. 내년에 뜻을 함께 이들과 걷는 걸 계획하고자 한다. 동시에 로스엔젤레스에서 시카고까지 이어지는 루트66도 아울러 권했다.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 타고 건너가 뉴욕에서 차를 렌트한 뒤 그곳에서 시카고까지 간 뒤 66번 간선도로를 타고 서부까지 가는 계획이다. 도중에 옐로스톤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리고 유타주 국립공원를 들르라고 권유한다. 지금까지 자기가 다닌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4-19.jpeg 비갠 뒤 떠오르는 해를 마주보며 산길을 걷다.

조지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알베르게 닫는 시간 11시까지 떠들다가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도 들락거리는 프랑스인들 탓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어둠 속을 랜턴 하나에 의지하며 걸었다. 하늘에 총총거리며 떠있는 별들이 따라왔다. 작은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며 깊은 숙소를 한시간 걷자니 다소 무서웠다. 뭐가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짐승과 마주치면 어쩌나 싶었다. 어둠 속을 2시간 이상 걸으니 동이 트면서 시야가 밝아졌다. 빛이 이리 소중하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3-47.jpeg 추위까지 곁들인 비가 그치자 산 속에 레인보우가 순례객들에게 인사했다.

산 안개가 자욱한 길을 한참 걷다가 동이 트면서 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숨이 막혔다 산 안개는 여전히 산 정상에 걸렸다. 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산 중간에 펼쳐진 푸른 목초지, 그 너머로 끝간데 없이 뻗은 산 등선은 저 멀리 거인의 성처럼 버틴 산맥으로 이어졌다. 그 비경 위로 비가 쏟아졌다. 신비로웠다. 추위도 잊고 한참을 멍때렸다. 차가운 빗물이 손 위로 흘렀지만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순례객들이 다가와 옆으로 모여 웅성거렸다.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구름에 갇힌 산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5-59 023.jpeg 안개 속 산길을 걷다보면 구름 위를 걷다는 느낌을 알게된다.

추위를 피할 겸 산 정상 부근 마을에 있는 바로 들어갔더니 에바와 그의 무리들이 “헤이 리"라고 합창하며 나를 반겼다. 그들 반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를 다 안다며 반겼다. 리가 왔으니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커피와 초콜릿 파이를 먹다 말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폴란드인 도미니카는 나를 안았다. 열흘 전인가 그녀 물집을 치료한 적이 있다. 그 덕분에 통증을 느끼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며 내 별명인 “닥터 리"를 연호하며 감사해했다. 군대 행군 중에 배운 물집 치료 덕분에 스페인 카미노에서 유명인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미국, 사이프러스, 스페인 등 다국적 무리들과 함께 걸었다.


독일인 다르코는 3년전 카미노를 걷다가 죽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걷는다. 그의 친구는 2018년 여름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않고 무리하게 51km를 걷다가 탈진하여 길 위에서 죽었다. 그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친구를 생각하며 카미노를 걷는다. 두꺼운 안경에 별 말없이 걷는 다르코의 옆을 말없이 걸었다. 그가 그의 친구를 묵묵히 다시 떠오를 수 있게끔. 카미노를 걷는 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유를 갖고 있다. 그 이유의 답을 산티아고에 닿으면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산티아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참, 이탈리아인 무리들은 산티아고에 하루 묵고 바로 비스테이야로 출발한다고 한다. 산티아고에서 사흘을 걸으면 대서양을 마주할 수 있는 해안가에 닿는다. 그들이 비스테이야에 도착해 그들의 걷는 이유의 해답을 찾기 소원한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5-27 010.jpeg 트리아스텔라 알베르게 가는 길에서 수령 800년 된 나무 앞에서 촬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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