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51km를 걷다

[10월4일] Triacastela - Portomarine

by 이철현

하루동안 51km를 걸었다. 새벽 6시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를 출발해 사리아(Sarria)를 걸쳐 프르토마림(Portomarin)에 오후 4시에 도착했다. 시간당 평균 5km 이상 걸은 셈이다. 아침식사 빼고는 쉬지 않고 걸었다. 중간에 이탈리안 무리들과 재회해 그들과 같은 숙소에 묵었다. 물집을 치료해줬던 텍사스걸 홉 브라이스와 피레네를 함께 걸었던 라트비아인 아르투어와도 재회했다. 아르투어와 홉은 이탈리아인 무리들과 줄곧 함께 움직였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5-37 015.jpeg 갈리사이 지방에 접어들면서 산속 풍경은 별천지다.

40km를 넘어 한참 걷고 있는데 나를 발견한 이탈리아인 무리들이 “미스터 리"라고 합창하며 나를 반겼다. 이들은 나보다 20km 앞에서 오늘 출발했다. 엄청난 속도로 이들을 따라잡은 것이다. 아무튼 과묵한 피렌체 남자 니코는 쿨하게 반겼고 소아과 의사 안나를 전쟁 나간 오빠가 돌아온 것처럼 환호했다. 아나와 구분이 가지 않게 생긴 미녀 아르줄은 나를 안았다. 코걸이를 걷고 있는 귀여운 세레나를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게 미안할 정도로 열댓명이나 되는 이탈리아인드리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가와 한다. 역시 이탈리아인들은 유쾌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탈리안과 만찬.jpeg 미친 듯이 날뛰며 즐기는 이탈리아인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처음 보는 이탈리아인들도 있다. 그들마저 나를 안다고하며 인사를 건넸다. 카미노를 걷는 모든 이들이 나를 안다고 한다. 이탈리아인 의사부터 텍사스걸까지 5명 이상 물집을 치료하다보니 탁터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카미노를 걷는 아시아인들이 적다보니 희소성이 있다보다. 내 배낭 무게가 5kg 이하라는 것도 회자된다고 한다. 아무튼 이곳에서 만난 1백명 넘는 이들이 다른 순례객들을 만날 때 나에 대해 언급한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카미노에서 나는 유명인사다.

KakaoTalk_Photo_2021-10-04-16-35-54 021.jpeg 안개낀 산길을 슬로베니아 커플이 걷는다.

이들과 같은 숙소에 묵으면서 이탈리안 요리사가 만드는 정통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기대된다. 샤워하고 잠시 잠들었는데 홉이 깨웠다. 한국인 남자친구와 영상통화하다 나를 바꾼 것이다. 그로인해 텍사스걸 남친과 나는 한국어로 한참 통화했다. 참 희한한 상황이다. 카미노에서 걷다가 물집을 치료해줘 인연을 맺은 미국인 소녀의 남자친구와 스페인 마을에서 한국어로 영상통화하다니. 허 참! 이것도 카미노가 만드는 이상한 일 가운데 하나일게다.


저녁식사는 성찬이었다. 피렌체 출신 니코와 밀라노 출신 마우리시오가 합작한 이탈리아 정통 파스타의 맛은 별미였다. 스페인 와인과 맥주가 곁들여졌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웃고 춤추며 저녁식사를 즐겼다. 이탈리아인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인 듯하다.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고 그 속에서 떠들고 춤추고 웃는다. 그의 행복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방관자처럼 지켜봤다. 소아과 의사 안나가 나를 그 행복의 무리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녀의 행복한 미소에 마법처럼 끌려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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