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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알함브라 보며 그리운 이를 떠올리다

[10월 26일] 카르멘 데 로스 마르티레스와 산미구엘알토 필참 코스

by 이철현

코르도바에서 렌페(국영 열차)를 타고 1시간 50분 동쪽으로 달려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그라나다 역에서 숙소까지는 20분가량 걸렸다. 숙소 올드타운 호스텔은 도심에 있었다. 알바이신이나 레알레하 지구도 걸어서 20분이면 닿는다. 메르세데스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한국어 인사말도 한다. 체크인하는 동안 사무실을 둘러보니 태극기 마그네틱이 벽에 붙어 있고 한복 입은 아기 신랑 신부 인형도 진열되어 있다.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듯했다. 아주머니는 “대학생 1학년 아들이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어를 배우고 태권도도 익히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아들이 한국 마니아다 보니 한국 손님은 각별하단다. 스페인어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지금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더니 연습 삼아 앞으로 스페인어로 대화하자고 한다. 아주머니 덕분에 그라나다 첫날은 기분 좋게 시작했다.

산미구엘알토 전망대 오르는 길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

숙소에서 짐을 부린 뒤 바로 카르멘 데 로스 마르티레스 공원으로 갔다. 알함브라 궁전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공원으로 ‘순교자들을 위한 정원’ 쯤으로 해석된다. 언덕 비탈면을 따라 조성되었다. 야자수 같은 열대나무, 낙엽수, 침엽수가 섞여 자란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미로처럼 막다른 길이 나오다가 다시 언덕 경사면으로 이어진다. 아라베스크 문양이 인상적인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면 지면에 닿은 연못이나 분수를 이용한, 이슬람 특유의 아웃테리어가 자주 눈에 띈다. 그라나다 시내가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분수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 키 큰 야자수가 우거진 공원이 자리한다. 경사면을 따라 맨 위까지 오르면 저 너머 알함브라궁전 서쪽 면이 키 큰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산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

정상까지 닿은 경사면은 다시 아래로 방향을 튼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미로 같은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공간이 열리고 장방형의 연못이 나타나는가 하면 이슬람 양식의 벽으로 장식한 비밀 정원이 나온다. 겨울 오후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만 개방하는 터라 서둘러 둘러본다고 했지만 금세 1시 30분이 지났다. 산니콜라스 전망대로 향했다. 도보로 25분 거리다. 레알레호 지구와 알함브라 궁전이 접하는 길로 들어섰다. 하늘을 가릴 만큼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오솔길이 내리막길을 따라 멋지게 뻗고 길 양쪽에는 돌도 포장한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면서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다. 키 큰 나무 사이로 빈틈이 생기면 햇빛이 쑥 들어오고 열린 나무 사이로 하늘이 파랗다.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산책로를 따라 레알레호 지구를 벗어나 알바이신 지구로 넘어갔다,.

카르멘 데 로스 마르티레스 공원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 서쪽면

레알레호 지구가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다. 반면 알바이신은 아랍인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도심인 센트로를 중심으로 북서쪽에 레알레호 지구 북동쪽에 알바이신 지구가 자리한다. 두 곳 모두 언덕 위에 있어 오르기 만만치 않다. 산니콜라스 전망대는 알바이신 지구 중턱에 있다. 산니콜라스 전망대로 오르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언덕 맞은편에서 가장 멋진 알함브라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전망대에 오르니 알함브라 동쪽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하! 이곳에 관광객 행렬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만했다. 알함브라, 나스리, 헤렐리페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산 위에 우뚝 솟은 알함브라 궁전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가톨릭 세력이 알함브라 궁전을 함락하지 못하고 주변을 봉쇄해 이슬람 왕국이 스스로 항복하기 기다린 이유를 알만했다.

카르멘 데 로스 마르티레스 공원

관광객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다. 그곳에서 20분가량 더 비탈길을 올랐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산미구엘알토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니 작은 교회가 나타나고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인 그라나다 시민들이 보였다. 연인이나 친구들이 짝을 지어 발아래 펼쳐진 그라나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회 앞 둔덕에 앉았다. 왼쪽으로는 알함브라 궁전이 지적에 있고 발아래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알바이신 지구가 나타났다.

그라나다 대성당 앞에서 찰칵

그곳에서 한참 멍 때리고 있다 보니 석양이 졌다. 알함브라 궁전은 어둠 속에 서서히 잠겨 가고 알바이신은 하나둘씩 불을 켰다. 해가 산 아래로 넘어간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사면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니 알함브라 궁전의 해자가 흐르는 물 앞까지 왔다. 알함브라는 올려다보니 성벽 아래 조명을 받고 있었다. 조금 더 봤다면 조명을 받고 있는 알함브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뭐 내일 다시 가면 되지. 그런데 이곳은 혼자 올 곳이 못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와야 할 듯하다. 혹시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이곳에 내려와라. 없던 감정도 생길 듯하다. 나도 석양에 비친 알함브라와 알바이신을 보고 있다 보니 그리운 누군가가 떠올랐다. 지금쯤 자고 있겠지.

그라나다의 주인공 알함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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