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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일] 마드리드서 스페인 전성시대의 영광 체험

마드리드 왕궁 '보물 창고'... 프라도 미술관에서만 4시간

by 이철현

메르카도 데 산미겔은 술과 음식을 파는 시장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마드리드를 오면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유리 벽으로 사방을 두른 직육면체 건물 안에 와인, 맥주, 샹그리아를 빵에 해산물, 치즈, 하몬 등을 얹은 타파스를 판다. 테이블이 곳곳에 있으나 자리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울 정도로 인파로 가득하다. 같은 숙소에서 묵는 이들과 치즈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셨다. 테이블을 차지한 그리스인 부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테이블 귀퉁이에 치즈 놓고 4명이 둘러 각자 주문한 와인을 마셨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17-22 003.jpeg 마드리드 왕궁내 천정화
KakaoTalk_Photo_2021-11-02-19-27-14 004.jpeg 마드리드궁전 내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본 천정화

테이블을 공유하는 걸 허락한 그리스인 헨리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 식사 끝나면 바로 그리스행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다음 주 그리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보니 헨리에게 그리스 유적지와 섬에 대해 물었다. 헨리는 질문 세례를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친절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그리스 여행에 필요한 세부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헨리는 여행 계획이 나오면 왓츠앱으로 보내라고 한다. 자기가 체크해보고 일정, 동선, 비용 같은 부문에서 무리가 있으면 바로 잡아주겠다고 한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헨리! 부인과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해. 한국 여행 관련 정보를 세밀히 알려줄게. 하루 동안 서울 여행 가이드도 해줄게”라고 말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그리스 여행에 필요한 귀중한 정보를 한 번에 얻었다. 그리스인 친구도 하나 생기고.

KakaoTalk_Photo_2021-11-02-19-27-16 005.jpeg 마드리드 왕궁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본 1층 입구
KakaoTalk_Photo_2021-11-02-19-17-20 002.jpeg 스페인 왕가를 상징하는 사자의 상. 마드리드 왕궁 내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삼겹살 먹으러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아주머니께서 구워준 삼겹살에다 포도주를 곁들여 실컷 먹고 마셨다. 스페인에서 삼겹살을 먹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10월 30일 밤을 그리 보냈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27-06 001.jpeg 왕실 극장. 무슬림 점령 시절 시체 내다버리는 절벽 밑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혼자 나왔다. 함께 움직이는 게 좋긴 하지만 동선과 체류 시간의 제약 탓에 맘껏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무엇보다 프라도 미술관을 보고 싶었다. 다른 이들은 15유로나 내고 미술관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다. 그리스 여행시 촬영에 필요한 캐논 카메라를 구입하고 바로 프라도 미술관으로 갔다. 지난밤 새벽 늦게 잔 탓에 늦게 일어났고 카메라 매장 찾느라 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2시30분 넘어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했다, 오후 3시 시간에 맞춰 입장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러시아 상떼스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소장품이 8천 점이 넘는다. 그중 일부만 전시해도 일주일 내내 둘러봐도 다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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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카도 델 산미겔. 음식과 술 즐기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벨라스케스, 고야, 루벤스, 엘 그레코, 티치아노 같은 스페인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실컷 볼 수 있다. 압권은 벨라스케스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다. 귀족 아래 계급인 이달고 출신이지만 화가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아 귀족만 오를 수 있는 왕실 기사단에 합류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작품, 아니 스페인 중세와 근세을 통틀어 가장 탁월한 작품들을 남겼다. 최고의 작품 <시녀들> 속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홀 가운데서 쳐다보니 작품 속 인물들이 나를 주목하는 것 같은 느낌이 생생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벨라스케스 작품들을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빠지지 않고 봤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27-18 006.jpeg 알무데이나 성당 내부 성모 마리아상.

벨라스케스가 끝나자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작품들이 이어졌다. 고야는 뒤늦게 꽃을 피운 궁정화가다. 궁정화가지만 스페인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무책임한 왕 카를로스 4세와 그의 부인 마리아 루이사를 풍자한 그림을 남겨 유명하다. 프랑스 나풀레옹의 스페인 점령에 항의해 1808년 5월 2일 봉기한 스페인 민중 항쟁과 그 다음달 항쟁에 가담한 시위대를 처형하는 프랑스 군을 사실적으로 그려 스페인 민중 화가로서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미쳐서 어두운 색채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그림들을 그리며 블랙페인팅이라는 기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27-20 007.jpeg 스페인 무적함대 신화를 만들어낸 바산 제독. 스페인의 이순신 장군 쯤 되는 인물

엘 그레코는 그리스인이지만 스페인에서 활약한 매너리즘 화가다. 그리스 이름이 따로 있지만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로 불렸다. 신체 각 부위를 너무 길게 늘여 9등신에 가까운 인물을 그렸다. 그가 그린 성화 속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는 기괴할 정도로 길다. 그림 전체 분위기도 기괴하다.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강한 느낌의 흔적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다닌다. 티치아노는 바로크 미술의 대가로 꼽힌다. 어둠 속에서 빛에 노출된 신체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그려 바로크 미술을 연 천재로 평가받는다. 그가 그린 작품 <다윗과 골리앗>을 보면 어둠 속에서 빛에 노출된 신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그가 작품 속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하게 된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27-25 009.jpeg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서. 정치 집회나 처형 장소로 유명한 곳.

한참 보고 있는데 미술관 관리인 하나가 내 눈을 보면서 다가왔다. 혹시 내가 실수한 게 있나. 사진 찍지 않았는데. 조금 긴장했다. 그는 가까이 오더니 자기 손목의 시계를 가리켰다. 뭔 소리지? 몇 시인지 확인해보니 오후 6시 55분이다. 그새 4시간이 지난 거다. 미술관 내부에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0층, 1층, 2층을 오르락내리락한 것이다. 대박~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이가 없었다. 밖에 나오지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숙소에 돌아왔더니 숙소 아주니가 김치찌개를 해놓고 기다렸다. 매일 이리 음식을 대접하시니 고마웠다. 하루 숙박료도 3만 원도 받지 않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차려 주니 남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시내에서 사 온 참이슬을 곁들였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27-27 010.jpeg 마요르 광장으로 들어가는 골목과 아치문

11월 둘째 날 또다시 혼자 나왔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숙소를 나왔다. 마드리드 시내 투어가이드를 다운로드하여 들으며서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모르고 지나친 명소를 이해하며 방문하니 알찼다. 더 깊이 마드리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운로드 요금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다 마드리드 궁전에 왔다. 역시 궁전 투어가이드를 들으며 마드리드 궁전 곳곳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역시 4시간에 걸쳐서 돌아다녔다. 스페인이 누렸던 근세의 영욕이 담긴 유물을 잔뜩 간직한 궁전을 돌면서 화려함에 감탄했고 그 많은 유물에 놀라웠다. 조상들이 참 많은 걸 물려준 나라다. 궁전 내에서 사진 촬영을 불허해 천정화, 타피스트리, 조각, 건축 예술 등을 감사하고 투어 가이드 설명을 일일이 들으면서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엄청 걸렸다.

KakaoTalk_Photo_2021-11-02-19-27-30 011.jpeg 마드리드 주청사. 새해 맞이 종을 치는 곳으로 유명.

마드리드 궁전 안은 보물 저장고다. 엄청난 양의 금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하늘에 걸려 있고 일일이 염색한 색실들을 하나씩 엮어 만든 태피스트리, 중국과 일본산 도자기, 이탈리아 대리석, 손으로 깎아 만든 크리스털들이 전시되어 있고 벽은 온갖 색깔의 비단으로 두르고 금실과 은실로 왕실 문장을 비롯해 문양을 새겨 넣었다. 하늘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려 넣은 성서와 신화 이야기를 모티프로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그려 넣은 프레스코들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도 천장을 보며 걷다 보니 나중에는 목이 아팠다. 마드리드에 오면 왕궁은 꼭 오시길.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 중 가장 값나가는 보물을 4시간 만에 다 봤을게다. 일일이 설명하다가는 책 한 권 쓸 듯해 이것으로 줄인다.

KakaoTalk_Photo_2021-10-31-19-43-55 020.jpeg 마드리드 도심을 가로 지르는 그랑비아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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