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철현 Nov 26. 2021

타베르나에서 먹는 그리스 정찬 같은 곳, 아네테

수천년간 이민족 지배를 견뎌낸 도시국가 아테네의 후예라는 자부심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골목 사이로 이어지는 계단 옆 식당 크렙시드라에 왔다. 벌써 두번째다. 계단 옆 유리로 구분한 노란 식당으로 그리스 전통음식을 파는 타베르나(taverna)다. 소금에 절인 올리브 맛이 기가 막히다, 그리스 빵 피나(pina)를 올리브에 찍어 넘으면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가 따로 없다. 그리스 전통 샐러드 흐리아티키 살라타를 시켰다. 흐리아티키 살라타는 가장 아테네다운 음식이다. 토마토, 양파, 고추, 올리브를 섞어 올리브로 무친 뒤 하얗고 두툼한 치즈 덩어리를 얹어서 나온다. 야채는 특유의 신선한 맛 그대로 씹힌다. 치즈는 나이프로 누르거나 자르면 부서진다. 소금에 절인 치즈는 야채의 심심한 맛을 보완하다. 식자재마다 지닌 개성들은 마지막에 뿌리는 올리브유로 눌러 하나의 요리로 완성한다. 

두부처럼 생긴게 그리스 치즈다. 흐리아티키 살라타만으로 한끼 식사 거뜬하다.

아테네는 도시국가로 정체성을 잃은지 오래다. 기원전 431년부터 30여년간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면서 아테네는 패권 국가로서 지위를 잃었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알렉산더 대왕은 아테네를 비롯해 그리스 도시국가 전역을 점령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그리스 도시국가로부터 받은 지배였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로마 제국은 단숨에 그리스를 점령했다. 비잔틴제국까지 합치면 1천년 넘는 기간 아테네는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비잔틴제국이 쇠퇴하자 오스만 투르크가 발흥하면서 아테네는 400년간 이슬람 국가 통치를 감수해야 했다. 수천년간 타민족 지배를 받아오다 1830년 무장투쟁을 벌인 끝에 간신이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아테네 시내에는 그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세운 개선문이 제우스신전 앞에 건재하다. 하드라이누스 도서관이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보고 있다. 시내 곳곳에는 비잔틴제국의 동방정교회에서 파생된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들이 자리한다. 건물 창문이나 인테리어, 음식 문화에서 투르크 영향이 강하다. 인종도 서유럽보다는 터키에 가깝다. 아크로폴리스나 아네테 아고라에는 도시국가 그리스 문명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다. 개성 강한 문명의 유적들은 민주주의 발상지라는 도시국가 그리스의 정체성 아래에 섞여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토마토, 양파, 고추 같은 야채와 하얀 치즈 덩어리, 그리고 빵이 아테네 여신이 아테네 시민에게 선사한 올리브의 기름으로 하나의 음식으로 섞이듯이. 

이 수블라키는 꼬치에서 빼서 그리스 빵 피나와 함께 나왔다.

호리아티키 살라타는 전채 음식에 가깝다. 메인 디시 수블라키가 나왔다. 양, 돼지, 소, 닭 고기를 꼬치에 꿰어 불에 구운 꼬치구이다. 별 다른 조미료나 소스를 넣지 않았다, 함께 나오는 야채와 고기덩이를 떼어서 먹는다. 다른 요리 문화가 곁들일 여지가 없다. 오로지 고기 특유의 맛을 소금 간으로만 살렸다. 아크로폴리스는 이민족으로부터 아무 영향을 받지 않고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오스만 투르크 지배 시절 아테네 주재 투르크 총독의 부인이 에릭세이온 신전을 거처로 사용한 적있다. 1687년 오스만 투르크가 베네치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파르테논 신전을 무기고로 사용하다 폭발물이 터지면서 지붕을 비롯해 벽 대부분이 완파당했다. 그럼에도 비잔틴, 이슬람, 로마 건축 양식이 침범하지 못했다. 그냥 내버려두었지 이민족의 건축양식을 본받아 재건하지 않았다. 


그리스가 독립국가로서 자리 잡고 도시국가 아테네라는 정체성을 뒤늦게 찾으려 하면서 아크로폴리스 재건작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 200여년간 그리스는 파르테논과 에렉테이온 신전을 복원 복구 작업을 끊임없이 벌였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무너져 흩어져버린 건물 잔해들을 퍼즐 맞추듯이 맞춰갔다. 그사이 파르테논 동쪽 페디먼트를 비롯해 외국인 불법 반출한 문화재의 반환 작업도 벌였다. 오스만 투르크 지배 당시 아테네 주재 영국 대사 토머스 브루스라는 작자가 파르테논의 동서쪽 페디먼트를 비롯해 보물들을 영국으로 반출했다. 그리스는 영국에게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제 사회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영광과 오욕의 역사는 올리브 같은 도시국가 아테네의 후예라는 정체성으로 엮여 지금의 그리스를 만들고 있는거 아닐까. 

아크로 폴리스는 아테네의 왕관이자 토핑 같은 곳

그리스 음식에는 후식이랄게 없다. 치즈에 꿀을 뿌려 먹거나 젤라또를 곁들인다. 그 단맛이 야채와 고기에 익숙해진 입맛을 달콤하게 마무리한다. 아테네에서 리카베투스 언덕 아래로 아테네 전역이 하얀 치즈처럼 펼쳐진다. 인구 1천만명 이상이 사는 아테네에는 하얀 집들이 빼곡하다. 리카베스트 산에서 내려다보면 제우스 신전, 신타그라 광장 옆 아네네 국립 정원 같은 녹지를 제외하면 하얀 치즈처럼 집들이 늘어섰다. 아크로폴리스는 그 하얀 치즈에 올린 노란 꿀 같고 맛을 완성하는 토핑처럼 한가운데 위치한다. 그 언덕 위에서 아크로폴리스는 빨간 석양을 배경으로 하얗게 돋보이거나 야간 조명을 받아 홀로 빛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테네, 아크로 폴리스 홀로 빛나는 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